전례 안에서의 마리아
최경선
박사
들어가면서
우리가
사랑하는 어머니,
성모님의 축일은 교회의 전례력 안에서 주님의 축일과 관계되어 일 년 내내 이어지고 있다.
사실,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중 전례헌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기
아들의 구세 사업과 끊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는,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를 비범한
애정으로 공경한다.”(103항).
그리고 교회헌장 66항에서는 성모 공경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들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모친으로서 교회의
특별한 예식으로 공경 받으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복되신 동정녀는 오랜
옛적부터 ‘천주의 모친’이란 칭호로 공경 받으시고 신도들은 온갖 위험과 아쉬움 중에 그의 보호 밑으로 들어가 도움을 청한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1,48-49) 하신 마리아의 예언대로 특히 에페소 공의회 이후 하느님 백성의 마리아 공경은
존경과 사랑과 기도와 본받음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였다. 교회 안에 언제나
있었던 이 같은 마리아 공경(恭敬)이
비록 온전히 독특한 것이기는 하나, 혈육을 취하신 말씀인 성자가 성부와 성령과
함께 받으시는 흠숭(欽崇,
‘들어 높여 공경하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그 흠숭에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이다.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는 성모가 공경을 받으심으로써
성자가 옳게 이해되시고 사랑과 영광을 받으시며 성자의 계명이 준수되도록 하는 것이다.”
같은 헌장 67항에도 중요한 대목이 있다.
“거룩한 공의회는 이러한 가톨릭 교리를 의식적으로 가르치며,
동시에 복되신 동정녀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충분히 촉진하고, 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온 신심행위의 풍습을 중히 여기며,
과거에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에 대하여 결정한 것을 엄수하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하는 바이다. 신학자들과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 데에 있어서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과 마찬가지로 온갖 거짓
과장도 힘써 피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교도권의 가르침을 따라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구함으로써 복되신 동정녀의 역할과 특권을 올바로 밝혀줄 것이니,
그것은 언제나 모든 진리와 성덕과 신심의 근원이신 그리스도께로 향한 것이다.
또한 말이나 행동으로 갈라진 형제나 다른 그 누구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힘써 피할 것이다.”
가톨릭교회의 전례력에 표시되는 공식적인 마리아 축일은
15개가 있다. 그중 넷(1/1
천주의 성모 마리아, 3/25 주님 탄생 예고,
8/15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 12/8 복되신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은 대축일이고,
셋(2/2 주의 봉헌, 5/3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9/8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은 축일이며 나머지 여덟(2/11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6/성령
강림 대축일 2주 후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선택, 7/16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8/5
성모 대성전 봉헌-선택, 8/22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의무,
9/15-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 날- 통고의 성모-의무,
10/7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11/2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의무)은
기념일이다. 이제 대축일과 축일, 그리고
기념일 등으로 나누어 그 유래와 의미 등을 살펴보기로 하자.
대 축 일
1.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3.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4.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1.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은 오랜 교회의 전통을 현대에 되살린 교회 전례 개혁의 한 가지 예가 된다.
1969년 전례력 개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1월
1일이 예수의 할례 축일이었다.
‘모친’으로서 마리아를 기려온 것이 언제부터인지는 그 기원이 모호하다.
지방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축일이 다양한 날짜에 거행되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428년경부터 8월
15일에 성모 축일을 거행하다가 그것이 아르메니아 교회에 파급되었는데, 458년부터는
게쎄마니에서 대대적으로 이 날을 경축하였다. 한편 동방교회에서는 이보다 좀 늦게,
성탄을 전후하여 ‘천주의 모친의 날’(Day of Thetokos)이
도입되었다. 600년경의 그레고리안 월력과 로마력에서는 성탄 8부에
마리아의 중요성을 지극히 강조했는데, 많은 지방에서는 대림 4주나
12월 18일에 마리아 축일을 거행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동방교회에서는 비잔틴 교회가 12월
26일에, 곱틱 교회가 1월
16일에 이 축일을 지낸다.
포르투갈에서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를 기리는 운동이 널리 전파되자
1751년 교황 베네딕트 14세가 5월
첫 주일에 거행할 것을 인가함으로써 정착되었다. 많은 교구와 수도원에서도 이를
받아들여 행하였고, 1914년에 10월
11일로 날짜가 고정되었다. 그러다가
1931년에 들어서서 드디어 보편교회의 축일이 되었고,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에서 옛 전통을 다시 살려 성탄 8부
내 1월 1일로 확정되었다.
마리아 공경 5항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개정된 성탄 시기의 순서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천주의 모친 성 마리아 대축일을 다시 지내게 되었다는 점 같습니다.
옛 로마시대의 전례대로 1월 1일에
지내게 되는 이 축일은 구원의 신비 안에서 수행하신 마리아의 역할을 기념하고 ‘우리가 생명의 근원이신 성자를 맞아들이게
해주신’ 거룩한 어머니께 드리는 특별한 존엄성을 찬미하는 날입니다. 또한 이 날은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루카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을
다시 한 번 들으며,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기회가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이자 새해 첫날이 되는 이 날을 평화의 날로 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호응은
날로 높아져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의 결실을 맺고 있습니다.”
‘천주의
모친’이라는 칭호는 성서 안에서 찾아볼 수 없으나,
이미 3세기 초부터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교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었다. 이것이 교의적으로 승인된 것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였다.
이는 네스토리우스(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와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삼위가
혼연하여 일체임을 주장. 따라서 말씀이신 하느님을 낳아주신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다.) 간의 그리스도론적인 논쟁을 종결(“두
본성이 완벽한 일치를 이루셨기에 우리는 한 분의 그리스도, 한 분의 성자,
한 분의 주님이시라 고백 한다”)한 것뿐 아니라,
마리아를 참으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선포를 한 데 의미가 깊다.
사실 신약성서에 보면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셨고(루카
1,31), 당신 태중의 아기가 예수이며(루카
1,42), 아기를 낳아 포대기에 싸 눕혔고(루카
2,7),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루카
2장) 하니,
신성과 인성이 완벽하게 결합된 ‘예수의 어머니’이심이 확실하며 따라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위에서 본 마리아 공경 제5항의
내용과 같이, 이 날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되새겨 볼 기회가 된다.:
1. 갓 태어나신 평화의 왕을 경배하고,
2.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다시 한 번 들으며,
3. 평화의 모후를 통하여 하느님께 평화의 고귀한 선물을 청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탄 후
8일째 되는 날이자 새해 첫날이 되는 이 날을 ‘평화의 날’로 정했는데(매년
이 날이 되면 교황님의 메시지가 발표된다), 이에 대한 호응은 날로 높아져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의 결실을 맺고 있다고 한다.
2.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은 주님의 성탄과 연관되어 설정된 축일이다.
주의 성탄 대축일(12.25)로부터 만
9개월 전에 위치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이 날을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로 정한 것은 1969년 개정된 전례력에서이다.
이 축일은 오랫동안 구세사에서 가장 고귀한 역할을 수행하신 그리스도의 모친을 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주요 축일이었다. 그러므로 서방교회는 물론 동방교회에서도 사순시기에
이 축일을 거행해 왔다. 이와 같이 주님 성탄 대축일과 관계가 있으므로
본질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축일이라 하겠으나, 마리아에게도 큰 의미가 있는 날이다.
이 마리아 축일을 언급하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6세기경
동방교회에서 찬미가의 시인으로 기려졌던 Romano il Melode(+560)가
지은 Kondakion(긴 찬미가)이다.
여기서 이 축일은 ‘천주의 모친 영보’라고 소개되었으며,
루가 복음 1장 26절에서
38절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로마 교회에
도입된 것은 7세기경이다.
이
축일은 특별히 하느님이 인간들과 함께 일하시는 방법을 보여준다.
그분은 협력을 강요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총의
말씀으로써 인간을 초대하시는 것이다. 신앙 문제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것을
하느님과 나자렛 소녀와의 사적이고 작은 알림 사건으로 다룬 적이 없다. 오히려
모든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이고 구원적인 사건으로 여겨왔다.
여기서 마리아는 인간의 대표자로서 대답하는 인물이다.
이
날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있어서 정점이 되는 대화의 순간을 기념하는 날이자,
동정녀가 구원 사업에 동참하는 것을 기리는 날이다.
바오로 6세 교황의 마리아 공경 6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말씀의 강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로마 전례력에서 ‘주의
탄생 예고’라는 옛 명칭을 조심스럽게 되살리고 있는 3월 25일의
축일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념하는 날입니다. 즉
마리아의 아들이 되신 ‘말씀’과 천주의 모친이 되신 ‘동정녀를 함께 기리는 축일’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기꺼운 마음으로 네(Fiat, 루가
1,38)라는 대답을 드림으로써 성령의 감도하심을 통하여 ‘천주의 모친’이 되시고 살아있는
모든 이의 참된 어머니가 되시며, ‘유일하신 중재자’(1디모
2,5)를 잉태하심으로써 ‘참된 계약의 궤’요 ‘하느님의 궁전’이 되신 새로운 하와,
순종하고 충실하신 동정녀가 되십니다.”
3.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이
대축일의 전례가 시작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마리아의 무덤이 있었다고 여겨지는 예루살렘 지역에서 시작된 것만은 거의 확실시된다.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아 피해 온 동방교회 수도자들의 영향을 받아 로마에 전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마우리찌오(Marurizio, 582-602) 황제의
통치 때 이것은 ‘하느님 모친의 영면’(Dormizione della Genitrice di Dio)라는
이름 아래 축일을 거행할 것이 제국 전체에 명해졌다. 교황 세르지오(683-701)는
‘주의 봉헌 축일’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그리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 축일’과 더불어 이 대축일에 행렬을 하도록 했으며, 교황 레오
4세(855년)는
8부 축일로 거행할 것을 선언하였다. 중세기엔
옥수수와 과일의 첫 수확을 감사드리는 축제로 자리 잡기도 했는데 특히 남부 유럽에서 그러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50년에
마리아가 육체까지도 하늘에 들어 올림 받으셨다는 것을 교의로 선포하였으며, 1970년
제정된 새 미사 경본에는 밤샘(Vigil)을 하는 유일한 성모 축일이 되었다.
이날 미사 본기도에는 “마리아의 육신을 그 영혼과 함께 천상 영광에 불러들이셨으니,
우리도 항상 천상을 그리워하며 그 영광에 참여케 하소서”라는 대목이 있다.
동방에서는 전야제에 단식을 한다.
**
교회 문헌
* 비오 12세의 사도헌장(MD,
Munificentissimus Deus, 1950)
“원죄 없으신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셨을 때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나라의 영광에 이르신
이 교의를 선언하는 바이다. (DS 3903)”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LG,
Lumen Gentium, 1964)
- 66항: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성자 다음으로
모든 천사와 사람 위에 들어 높임을 받으신 마리아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에 참여하신 지극히 거룩한 천주의 성모로서 교회에서
특별한 공경으로 당연히 존경을 받으신다.”
- 68항: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이미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2베드
3,10)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서 빛나고 계신다.”
* 바오로 6세의 문헌 (MC,
Marialis Cultus, 마리아 공경, 1974) 6항
“8월
15일 대축일에는 마리아의 영화로우신 승천을 기념한다.
이 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다.
따라서 이 날은 교회와 전 인류에게 그분이 바라던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축일, 즉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히브
2,14; 갈라 4,4 참조)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 충만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축일이다.”
**
교의 선포에 대해
1950년
11월 1일
성모 승천 교리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신 교황 비오
12세께서는 사도헌장에서 “성모님께서 지상생활을 마치실 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그동안 교부들이나 신학자들이 당신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성모님께서도 돌아가셨다고 믿어온
바를 언급하는 동시에 ‘육체와 영혼’이 함께 하늘에 오르셨다고 인정함으로써 마리아의 인성을 확실히 하신 것이다.
교황은 이 선언으로 오랜 논쟁을 종식시켰다. 성모
승천에 관한 교리가 자리 잡은 시기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부정적 견해는 소수일
뿐 전 교회가 이미 마리아의 영면(永眠)을
믿어왔으니, 사실상 이 교의는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5세기 무렵 자리 잡은 것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교의를 선포한 이후 성좌는 각계각층으로부터 성모 승천 교의에 관한 정의를 내려야 한다는 건의를
받았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로부터 1941년까지
수많은 이들이 교의 선포를 건의했던 것이다. 113명의 추기경,
300명 이상의 대주교와 주교들, 3만
2천명 이상의 사제와 남자 수도자들, 5만 명 이상의
수녀들, 8백만 명 이상의 평신도들이 그들이다.
성좌는
1946년에 가톨릭 모든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보냈다.
“존경하올 형제 여러분, 귀하께서는 성모님의 육적 승천을 우리의 신앙 교의로
규정하고 선포해도 좋은지 지혜와 슬기를 다하여 잘 판단하시기 바라고, 여러분이
거느린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이를 원하는지 응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교황 비오
12세는 설문지의 답변을 수집한 후 “거의 만장일치”라고 하면서 교의를 선포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게 이미 받아들여지고 알려진 바이다”라는 말을 볼 때,
이미 교회와 신자들이 이 영면 축일을 거행하면서 마리아의 육체가 영혼과 분리되었다 할지라도
썩지 않고 영광 속에 있음을 믿어왔음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불가분의
인물이고 예수님의 영광 속에 함께 하시는 어머니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를 잉태하여
낳으셨고 양육하셨으며 양팔로 가슴에 안으셨던 마리아가 비록 육체적으로는 이 세상을 뜨셨다 하더라도 아드님과 영육 간에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모
승천 교의는 신자들에게 성모님의 죽음과 장례 및 부활 등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단순하게 마리아의 육체와 영혼이 천상 영광에 올림을 받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주님의 승천(Ascension)과
성모님의 몽소승천(Assumption)에 대한 차이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모님이 오르신 천상 영광은 당신 아들의 영광에 의해 성모님 개인에게 한정된 일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참여인 것이다.
신자들은
이 대축일과 관련하여 마리아에게 여왕이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축일’에서 계속됩니다. 이 축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합니다.”(MC 6항)
4.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이
교의는 오랜 세월 논의를 거쳐 완성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6세기경에 마리아의 탄생을 경축하기
시작하여 7세기경 성모 잉태 축일이 생겼다.
서방에서는 동방 수도자들에 의하여 영국에 전래되어 1060년경
마리아의 잉태 축일(the Conception of Mary)이 경축되었고,
후일 노르망디 정복으로 인해 전 유럽에까지 확산되어 원죄 없는 잉태 축일(Immaculate
Conception)로 발전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신학적 논쟁이 있었다.
특히 ‘성모 박사’로 추앙 받는 성 베르나르도가 리옹 공의회의 결정 사항에 반대 서한을 보내는
등 반대의견 또한 만만치 않았다. 당시의 신학적 관점으로 베르나르도는 잉태 시에
원죄가 유전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다가 1438년
9월 15일에 바실 공의회에서 교의와 축일이 인준되어
수세기에 걸친 논쟁이 종식되었다. 드디어 1695년
교황 인노센트 12세가 미사 경본과 성무일도 및 제8부
등을 확정하여 전체 교회에 공인하기에 이르렀고, 1708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에 의해 의무 축일이 되었다.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이 교의를 선포한 지 4년
후 성모님께서는 루르드에서 발현하시어 자신이 바로 ‘원죄 없는 잉태’(I am the Immaculate
Conception)라고 하셨다. 개정된 전례력엔
대축일로 지정되어 있다.
**
교회 문헌
* 비오 9세 회칙
(Ineffabilis Deus,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 1854년
12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수태 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미루어 볼 때,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 은총으로 그분에게만 주어지는 은덕으로 원죄의 모든 허물에서 자유로워지셨음을 교회는 규정하고 선포하는 바이다.
이는 사실상 전 교회가 끊임없이 믿어온 신앙인 것이다.”
* LG 56항
“그러기에 교부들이 흔히 천주의 성모는 마치 성령께 형성된 새로운 조물같이 온전히 거룩하시고 아무런 죄에도 물들지
않으셨다고 부른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 MC(바오로 6세, 1974년)
3항
“대림시기에는 구세주를 맞이할 근본적인 준비를 하고 한 점 흠이나 주름도 없는 교회의 태동과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기념하는
12월 8일의 대축일 외에도 마리아를 자주 언급하게
된다.”
* RM(요한 바오로 2세, 1987년)
10항
“에페소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말하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을 받았다’(에페
1,7)고 덧붙이고 있다. 교회의 공식 문헌들 안에
엄명된 가르침에 의하면 이 ‘영광스러운 은총’은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탁월한 방법으로 구원받으셨다’는 사실을 통하여
드러났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에게 내리시는 풍부한 은총과 당신의 아드님이
되기를 원하시는 그분의 구속공로 때문에 마리아는 잉태 순간부터, 즉 존재할 때부터
그리스도께 속하며 강생을 통하여 자신의 아드님이 되신,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자신의 아드님이 되신, 영원하신 아버지의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지상 출산의 질서에 따라 당신 자신이 어머니로서 생명을 주신 그분으로부터,
신성에의 참여를 뜻하는 은총의 질서 안에서 생명을 받으시는 것이다.”
**
성찰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 내용은 마리아가 안나의 모태에 잉태되었을 때 아무런 흠(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이지 동정녀의 예수의 잉태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서에서 마리아의 출생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이 없고,
교의 정의가 긴 과정을 거쳐 정착된 것이기에 그 속뜻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성 안셀모의 제자였던 에드머(Eadmer,
1130)가 하느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므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다면서 성모의
원죄 없는 잉태를 옹호한 것이 교의 정착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교의
이해의 원론이라 할 격언을 남겼다. “Potuit, decuit,
fecit(하느님께서는 하실 수 있고, 적절하므로,
그렇게 하셨다).” 물론 하느님의 권능엔 끝이 없으나
확대 해석하는 마리아론의 안목에는 여러 어려운 점이 있음도 사실이다. 자칫
마리아의 지상 생활 역시 지복직관의 환시 속에 있었다는 등 적합성을 넘어 과장된 표현을 일삼는 신학자나 설교가들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후대에 이르러 교의로 천명된 두 가지 마리아 교의(원죄
없는 잉태와 몽소승천)는 일찍이 교의로 정립된 다른 교의(동정녀와
천주의 모친)와 적절히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과 천주의 모친성은 그리스도론적인 교의로서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마리아에 대해 뚜렷하게 밝힌 교의이다. 반면에 후대에 완성된 두 교의는
직접적으로 마리아에 대해 지적하여 드러내 놓은 것들이다. 언뜻 보면 하느님이며
사람이신 예수님의 모친으로서의 마리아에게 부여된 은사와 특은을 이 교의에서 찾을 수 있지만,
좀 더 면밀히 살피면 구원론적인 특성이 나타난다. 이
교의들을 통하여 우리의 종말을 예견할 수 있고 죄의 권세를 이겨 영광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서 우리는 마리아가 이미 구원되었음을 확인한다.
죄에 물든 이 세상 안에서 아드님의 공로로 마리아는 이미 구원에 도달하여 계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골고타에서 돌아가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분이 십자가상에서 원죄 없는 모친의 은총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물이라 믿는다.
원죄 없이 잉태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장 완벽한 존재가 바로 마리아라고 말할 수
있다. 하느님의 선물은 가장 순수하고 고귀한 은총이다.
이점은 ‘은총이 가득한’ 분으로 하느님의 선물에 신앙으로 응답함을 묘사한 강생의 신비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축일
1.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2.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3.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 축일
1.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주님의
성탄
40일 후에 맞게 되는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은 루카 복음 2,22-39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님과 그
어머니가 중심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성서적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구약성서 규정인 정결 예식에 의하면(판관 12,1-8),
여자는 사내아이를 낳을 경우 40일 간,
여아를 낳을 경우 80일 간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그것을 씻기 위해 어린 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
혹시 가난하다면 두 마리의 비둘기를 사제에게 바쳐야 했다.
또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 맏아들은 주님에게 속하는 것(탈출
13,2)이기에, 그분에게 아들을 바쳐야 했는데,
이것은 돈을 봉헌함으로써 대체될 수도 있는 것(신명
18,16)이었다. 이 규정에 따라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갔던 것이요, 마리아는 이때 자신의 정결 예식을 위한 봉헌과
그 맏아들을 봉헌하는 의무를 이행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무덤에서는 밤샘(Vigil,
전야제)을 하고 대미사가 봉헌되었다.
이 전례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다른 지역으로 점차 확산되어 나갔고, 5세기경부터는
초를 켜들고 미사에 참례하기에 이르렀다. 동방교회에서는 유스티노 1세의
통치 아래 ‘Hypapante(아기 예수와 시메온의 만남을 가리킴)’이라는
이름으로 534년부터 의무 축일이 되었다.
이는 구세주와 시메온 예언자의 만남을 가리키는데,
여기서 그의 어머니 존재 역시 등한시될 수 없는 것이었다. 서방교회에는
7세기에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동방에서는 세르지오
1세 교황 시대(687-701)에 성모 영보,
성모 탄생과 함께 이 축일이 특별한 행렬과 함께 거행되는 대축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이방 민족들을 비추는 빛”이라는 시메온의 말을 기억하면서 행렬에 초를 사용했는데,
바로 여기서 초 축성 관습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1969년
전례 개혁 때 ‘주님 봉헌’이라는 옛 이름이 회복되었다. 이 축일은 동방 교회와
성공회도 공유하는 축일이다.
복음서는
우리에게 예수가 아직 품에 있는 어린 아기일 때 벌써 마리아가 자기 생애에 있어 가장 커다란 희생을 드리는 전주곡과 같이
그분을 하느님께 바쳤음을 보여준다.
하느님께 아들과 마리아를 봉헌한 행위와 시메온의 예언은 부활의 신비를 예견하게 하는 것이다.
아들을 바치는 행위 안에서 마리아는 빛을 가져오는 여인이요,
반대 받는 표적으로 고통당하는 빛이신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소개된다.
그래서 복음사가는 마리아의 율법적 정결례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녀 자신의 봉헌과 아들의 봉헌
사이에 불가분의 일치가 있음을 강조한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회칙 ‘마리아 공경’ 7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주님 봉헌이라는 옛 이름을 되찾은 2월
2일의 축일도 그 풍부한 의미를 충분히 참작한다면,
아드님과 어머니를 함께 기념하는 축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축일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복되신 동정녀께서 주님의 고통
받는 종의 어머니요 옛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명을 수행하시는 분으로서 그리고 고통과 시련으로 신앙과 희망을 시험 당하는(루카
2, 21-35 참조) 새로운 백성의 모델로서 이
신비에 깊이 관련되어 계신 것입니다.”
2. 5월 3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 은총을 선물하기 위한 방문
루카
복음
1, 39-56, 엘리사벳을 방문한 마리아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는 축일이다.
그 기원과 발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공식적으로는 1263년 프란치스꼬 회가 총회에서 축일로 정하고 그들의 전례력에
삽입시킨 것이 효시라고 보지만, 학자에 따라 이견이 있기도 하다.
아무튼 프라하의 대주교 요한 옌스타인의 영향으로 교회에 정착되어 1368년
프라하 시노드에서 공인되어 널리 전파되었다. 그는 자기 교구 뿐 아니라 전 교회에
이 축일이 널리 보급되기를 원했는데, 로마의 우르바노 6세와
대립 관계에서 교황을 반대한 아비뇽의 반 교황 클레멘스 7세와의 화해와 일치를
중재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 우르바노 6세는
축일의 도입을 준비하여 1390년 희년에 선포하려 했으나 미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서거하고 말았다. 그리고 뒤를 이은 보니파시오 9세가
1389년에 공식적으로 이 축일을 공인하여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프란치스꼬 회는 성 요한 세자 축일(6월
24일)로부터 8일째
되는 7월 2일로 정했었는데,
개정된 전례력은 날짜를 앞당겨 5월 31일로
정했다. 즉,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3월
25일)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둔 것이다.
동정
마리아는 곧 어머니가 될 몸으로서,
나이 많은 여인인 사촌 엘리사벳을 도와주기 위해 그녀 집으로 갔다.
또한 주님이 자기에게 주신 경이로운 기쁨을 전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은 루가 복음 안의 유년사화 안에서 대비되는 두 개의 이야기와 연관된다.
엘리사벳은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과 함께 계신 마리아,
가장 위대하신 분을 잉태하고 계신 마리아를 알아보는 것이다.
|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루카 1,5-25)
|
예수 탄생 예고
(루카 1,26-38) |
|
- 예루살렘
- 즈카르야-엘리사벳
- 13절: ‘너의 청원이’(낮은
곳에서)
- 즈카르야의 의심 |
- 갈릴레아-나자렛
- 하느님의 은총
- 30절: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위)
- 마리아: ‘Fiat’ |
|
세례자 요한의 출생
(루카 1, 57-80)
|
예수의 탄생
(루카 2, 1-24) |
|
- 여드레만에 할례
- 아기 이름: 즈카르야
(요한)
- 즈카르야의 노래 |
- 여드레만에 할례
- 천사가 일러준 대로 ‘예수’
- 천사가 하느님 찬양, ‘하늘 높은
곳...’ |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를 들은 순간,
태중의 아들이 뛰놀며 더욱 높으신 분을 알아본다.
마니피캇(마리아의 노래: 루카
1, 46-55)은 비천한 이들을 끌어올리시고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다는 하느님의 역설적인
방법을 놀라워하는 노래이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3.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신 축일
마리아의
탄생 축일은 아마도
6세기 경 예루살렘에서 거행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5세기경에 이미 예루살렘 성전의 북쪽에 있는
성당이 성 안나에게 헌정되었고, 603년에는 예루살렘의 대주교 소프로니오가 그곳을
‘성모님의 탄생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축일이 9월에
자리잡은 것은, 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 9월에
새해를 시작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아직도 동방교회의 새해는 9월에
시작되는데 유럽이나 미국에서 학교 등이 9월에 새 학기를 맞는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또 9월 8일에
위치한 것은 후에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이 12월 8일로
확정되면서 그 9개월 후로 위치시켰기 때문이다.
어쨌든,
동방에서 유래한 이 성모님의 탄생 축일은 7세기에
로마로 전래되어 다른 축일과 함께 거행되었는데 교황 세르지오 1세(687-701
재위)가 찬가(Litania)를
바치며 로마 ‘포룸’에서 성모 대성전까지 행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경축되었다.
바오로
6세는 MC 7항에서 다음과 같이 이 축일에 대해
말했다. “복되신 동정녀와 그 아드님을 밀접히 결합시키고 있는 구원 사건과 관련된
축일들을 특별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축일들에는 ‘온 세상의 희망이요,
구원의 서광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성탄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9월
8일),...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함께 수난하시는’ 어머니를 기념하기 위한 통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9월 15일)
등이 있습니다.”
사실
성모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성서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교회는 전승 속에서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과 영성에 접하고 있다.
성모님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는 현 복음서에 속하지 못한 작품인 「야고보의 원복음」(기원
후 200년 경)에 수록되어 전해
내려오는데 이는 2세기 말 이집트에서 쓰였다.
사실상 서방교회가 ‘겔라시아누스 교령’(500년 경)에서
이 작품을 외경으로 배척했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잊혀진 작품이었다. 반면
에티오피아어, 아랍어, 아르메니아어,
게오르기아어, 콥트어,
슬라브어, 시리아어 번역본으로 동방에 널리 보급되어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1549년에서
1550년 사이에 동방 여행에서 복음서를 가져다 라틴어로 번역한 인문주의자 기욤 포스텔은
결론에서 저자가 야고보로 되어있는 이 작품을 경전으로 생각하였다. 그는 야고보를
주님의 형제로 여겼으며 이 작품의 제목을 「야고보의 원복음」이라고 하였는데, 이
야고보의 복음서가 예수 탄생 이전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연대순으로 볼 때 복음서들 가운데 첫째 복음서로 배열시켜 이렇게
부른 것이다.
「야고보의
원복음」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1-16장에서는 마리아의 가계, 탄생,
어린 시절, 예수의 잉태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부유하고 경건하나 자손이 없어 괴로워하는 요아킴과 안나 부부에게 신비로운 방식으로
마리아가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다. 옛 전승에 따르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는
요아킴과 안나이다. 요아킴은 나자렛에서 태어나 안나와 결혼하였으나 자식이 없었다.
한 때 그는 광야에서 40일 간 기도하며 자식을
청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가 아기를 얻으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노라고 약속함으로써 천사의 전갈을 듣고 후에 마리아를 낳았다고 한다.
이 마리아가 바로 예수의 어머니이다. 이 부부는
마리아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였다. 마리아는 세살 때부터 예루살렘 성전에
살았으며 그곳에서 천사가 그녀를 양육하였다. 열두 살이 되어 그녀가 처녀로
성장했을 때, 하느님께서 기적의 표징(이스라엘의
모든 홀아비가 성전에 모였을 때 한 마리의 비둘기가 요셉의 지팡이에서 날아올라 그의 머리 위에 앉았다고 함)으로
택하신 홀아비 요셉의 보호를 받았다. 이 당시 요셉에게는 이미 장성한 아들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
복음서는 이후 몇 년 동안의 사건을 요약하여 마리아가 성전의 다른 동정녀들과 함께 성전의 장막을 짰다는 사실,
천사의 수태 고지, 엘리사벳 방문,
요셉이 오랜 기간의 토목 공사에서 돌아올 때 마리아가 임신 6개월이었다는
사실에 당황했다는 내용만 보고한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1장
20-23절과 마찬가지로 요셉이 한 천사에게서 아기의 거룩한 탄생에 관한 소식을 듣는 내용이
있다. 「야고보의 원복음」에서는 그 뒤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 대사제 앞에서
하느님의 판결을 요청한다.
2부
예수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우리의 복음과 같다. 호적 등록을 하기 위하여
베들레헴으로 가는 도중에 마리아에게 해산 기미가 있어 요셉은 마리아를 도시 근방의 동굴에 머물게 하고 산파를 찾으러 나섰다.
산파는 아기의 놀라운 탄생을 함께 체험하였으며,
아기를 낳은 뒤에도 마리아의 처녀성이 보존되었음을 확인하였다. 그녀가 이를 말하자
살로메라는 다른 산파가 의심하며 다시 살펴보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녀의 손이
굳어버렸으나 아기 예수가 그녀의 손을 다시 고쳐주었다.
제3부에서는
즈카르야의 순교를 보고한다.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에게 속고 예수와 요한을 붙잡지
못하자 즈카르야를 살해하라고 명하였다. 「야고보의 원복음」은 유년기 복음서에
속하나 신학적․설화적
주요 관심사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이 복음서는 마리아론의 기초를 놓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
교회는 ‘예수 성탄 대축일’ 외에 오직 두 개의 탄생 축일만을 경축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이다.
기념일
1.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선택)
2. 6월, 성령 강림 대축일 2주
후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선택)
3. 7월 16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4.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선택)
5.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의무)
6. 9월 15일,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날: 통고의 성모(의무)
7. 10월 7일: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8.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의무)
1. 2월 11일: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선택)
성모님이
루르드의 동굴에서 벨라뎃다에게
18번 발현(1858년 2월
11일부터 7월 16일까지)하셨다.
이 때부터 전 세계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기념일은 1907년 비오 10세
교황 통치 기간 중에 도입되었으며, 개정된 전례력에서는 선택적인 기념일로 지정되어
있다.
벨라뎃다는
순백의 옷을 입은 부인의 모습을 보았다.
흰옷 위에 하늘색 허리띠를 두르고 각각의 발 위에는 금빛 장미꽃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습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상징한다.
벨라뎃다는
그 부인이,
샘의 물을 마시라는 명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샘이 없어서 어리둥절해 있자, 발현하신 부인이 손짓을 했는데,
벨라뎃다는 진흙 섞인 물을 약간 발견했을 뿐이었다.
손으로 떠보았으나, 아무 것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곳을 손으로 파기 시작했는데, 세 번을
버리고 네 번째는 좀 마실 수 있는 물을 뜨게 되었다. 루르드는 많은 이에게 있어,
높은 곳으로부터 오는 구원의 힘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2. 6월, 성령 강림 대축일 2주
후 토요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선택)
교황
레오
13세와 비오 10세는 성 요한 유데스(1601-1680)을
기려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첫 사도이고 사제이며 교사’라고 칭송했다. 예수
성심을 경축하기 20여 년 전인 1643년에
요한은 이미 2월 8일을 성모 성심
축일로 삼고자 동료들과 함께 계획하고 있었는데, 5년 후인 1648년에
오툰 교구에서 축일 거행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비오 6세가
팔레르모에서 축일을 거행하도록 윤허했으며, 비오 7세는
다른 교구나 수도회에서 요구가 있을 때 축일 거행을 수락하되 미사 경본은 성모 대성전 봉헌(8월
5일) 축일의 것을 약간 변형시켜 사용토록 했다.
그러다가 1914년의 미사 경본 개정 때엔 부록 편에
삽입되어 지역 축일로 하향 조정되기도 했다. 1942년 10월
31일, 파티마의 성모 발현(1917년)
25주년을 지내면서 비오 12세는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과 전 인류를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 성심께 봉헌하면서 이 날을 보편 교회의 축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1944년에는 이 날을 성모 승천 축일
8일 째 되는 날(현재 여왕이신 마리아 기념일인
8월 22일)로
정했었다. 그러나 1969년의 전례 개혁
때 등급이 하향 조정되어 선택 기념일이 되었고, 성령 강림 2주
후 토요일로 날짜가 정해졌다. 즉, 성령
강림 대축일 후 삼위일체 대축일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거행한 후의 금요일(성령
강림 2주일 후 금요일 예수 성심 대축일)
다음 날에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을 기념하도록 한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인간의 구원자」(RH, Redemptoris Hominis,
1979) 22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자렛의
동정녀께서 피앗이라고 대답하셨을 때 마리아의 성심에 구원의 신비가 자리 잡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특별한 감도로, 그 때부터 동정녀이자
모친이신 이 성심은 언제나 당신 아드님의 활동에 따르셨고,
그리스도께서 껴안으시는 그 많은 사람들을 끝없는 사랑으로 감싸 안으시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마리아의 성심은 끝없는 어머니의 그것입니다.”
티
없는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을 개인적 영성의 한 축에 놓기란 그리 쉽지 않다.
성모 신심이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그 뜻을 접하지 못했거나 간과해버리기 쉽다.
그래서 현대에 이르러서는 ‘예수 성심’께 대한 공경과 ‘티 없으신 성모 성심’에 대한 공경이
교회의 당면 문제와 다소 동떨어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영성적으로
성심에 대한 신심 속엔 성심께 기도함으로써 무엇인가 이룰 수 있다는 보상과 치유의 감성적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성심의 ‘약속’에 대한 수많은 저작들이 나돌기도 했다.
어쨌든
티 없는 성모 성심께 바치는 공경은 비교적 늦게 생겨난 신심인데,
중세와 라틴 교부들에게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를 우선 꼽을 수 있는데, 그분은 “성모께서 예수를 몸에 수태하시기
전에 먼저 마음에 잉태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성 암브로시오는 성모 성심을 본받을
것을 이렇게 강조했다. “성모님은 동정녀이시고 겸허한 성심이셨습니다.
성모님께서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성모
성심에 대한 가장 전통적인 언급은 요한 유대스의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때로 심장은 인간의 내면을 상징한다. 특히 사랑을
표시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리아의 성심을 기리는 것은,
단순히 마리아의 행동이나 기질 또는 값진 동정녀로서의 신비를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와 거룩함을 칭송하는 것이다. 이처럼
출중하고 완벽한 마리아의 성심은 우리가 귀감으로 삼는 모범이고 마리아의 성심을 닮고자 하는 우리네 가슴이 이루어야 할
소망이다. 마리아는 성심에 예수를 잉태하고 품으신 것처럼,
바로 예수의 지체들을 당신 자녀로 품고 사랑을 주신다.
아울러 모성적 사랑의 열매인 하느님을 주신다.”
성경에서는
신 구약을 통 털어 마음(심장,
가슴)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는 도덕적․종교적
관계의 뿌리라고 가르친다.
곧, 마음은 생명체의 심리적․도덕적․종교적
중심이 되고 선악의 단초를 여는 장소라 하겠다.
현대적 용어로 보면 양심이라든가 내면성 또는 개성적 자아를 판가름하는 곳이 곧 마음이다.
그래서 마음을 바꾸는 일은 사람 전체가 송두리째 바뀌는 일이다.
“나는 그들의 마음을 바꾸어 새 마음이 일도록 해주리라.
그들의 몸에 박혔던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피가 통하는 마음을 주리라.”(에제
11,19-20)
사도
바오로는 “‘어둠에서 빛이 비쳐 오너라.’
고 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 속에 당신의 빛을 비추어주셔서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2 고린 4,6)라고 했다.
이러한 하느님의 빛을 받아 그 뜻을 깨달은 성모 성심은 성령의 궁전이고 영원한 하느님 아들의
궁전이 되셨다. 그러니 우리 역시 그분을 본받음이 당연하다.
성모 성심 수도회 창설자인 뻬르 장 갤락(Pere Jean Gailhac)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여러분은 구속 사업에 밀접히 협력하시는 성모 성심의
딸들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고 다른 이들의 성화를 위해 부름 받은 여러분의
이 이름은 여러분의 봉헌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3. 7월 16일: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선택)
팔레스티나
성지 내에 있는 가르멜(Karmel:
‘하느님의 낙원’이라는 뜻) 산은 그리 광활하지 않은
25Km 정도 길이로 뻗은 산맥에 위치한다. 12세기
후반에 이 가르멜 산에 있는 엘리야의 우물가에 은수자들이 모여 거처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엘리아의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제방의 중심에 경당을 만들어 성모님께 봉헌하였다. 13세기경에 거의 완성
단계였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곳에 모인 은수자들은 ‘가르멜 산의 성모의
형제들’이라 알려졌다. 유럽에서는 이른바 ‘탁발승’(friars)으로
알려진 이들은 1252년 성좌로부터 ‘가르멜 산의 성모의 형제들’이라 불리게
되었다. 14세기에 이르러 7월
17일에 복되신 동정녀에 관한 ‘장엄 예절’이 거행되었는데 이는 수도회를 승인해준 리용
공의회의 폐막일인 1274년 7월
17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기념일은 그 중요성으로
인해 가르멜 회에서 매주 토요일에 봉헌되는 ‘성모 기념일’과 구별하여 ‘성모 장엄 기념일’이라 부르고 있다.
이 날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전날로 옮겨졌다.
중세기 말까지 성모님께 자신을 봉헌했음을 나타내기 위해 갈색 스카풀라(Scapular)를
걸치는 풍습이 널리 퍼져 나갔는데 1726년에 보편 교회의 축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전례 개혁을 하면서 선택 기념일로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0년 2월
11일, 갈색 스카풀라 700주년
기념하여 발표한 교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복되신 천주의 모친께 대한 사랑이
가톨릭 신앙을 활성화 시키고 윤리 규범을 진작시키는 데 얼마나 기여하는지 깨닫지 못하는 이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마음을 고양시키는 일은 신심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미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져 널리 간단하게 애용되고 있는
가르멜 회의 스카풀라는 이러한 신심행위의 가장 첫째 자리에 위치하며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마리아의 외투나 겉옷이라 불리는 거룩한 스카풀라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가호를 받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 가르멜 회와 관계있는 사람들은 스카풀라 착용을 동정녀의 겸양과
순결의 거울로 삼을 것입니다. 아울러 단순함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밤낮으로 이 옷을 걸치면서 하느님의 도움을 청하는 표지가 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죄 없으신 동정녀의 성심께 봉헌하는 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르멜
회의 성모님께 대한 사랑은 다양하고 복합적인데,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
마리아는 가르멜 회의 수호자이다.
가르멜 산에 세워진 첫 성당이 성모님께 봉헌되었다.
수도자들은 이 성당을 수도원 중앙에 위치시켜 이곳에서 매일 미사를 봉헌하였다. 첫
규칙서가 꾸며질 당시엔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13,4세기의 수도회
여러 규칙서들은 가르멜 회가 성모님의 영광을 위하여 설립되었다고 말한다. 가르멜
산의 성당을 성모님께 봉헌한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그들의 영신 수련과도 무관하지 않다.
유럽에 진출한 후에도 그들은 새로운 수도원 성당 이름을 ‘성모 영보’로 정했다.
이런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봉사’를 위한 가르멜 회 규칙서 중심 정신을 확립하면서
마리아를 어떻게 그들의 수호자로 부각시켰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성모님께 드리는 장엄 예절, 이른바 감사제를 거의 매주 거행하여 회원들이 마리아의
보호를 늘 돌아보고 생각하게 하였다. 이 시기에는 성모님에 대하여 ‘가르멜
회원들의 수호자’라는 호칭과 아울러 ‘가르멜 회원들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널리 사용되었다.
둘째,
마리아는 가장 고결한 동정녀이시다.
14-15세기에 가르멜 회에서는 ‘가장 고결하신 동정녀’로서 마리아에 대한 영성이 강조되고
꽃피었다. 이는 단순히 마리아의 순결성을 찬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허물이
배제된 채 오직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마리아의 순결한 성심을 고양시킨 영성이다.
가르멜 회는 1584년 로마의 미사 전례를 적용할 때 미사 경문 중 성 마리아(Sancta
Maria)라는 대목을 모두 복되신 동정녀(Beata Virgo)로
대체시키려 노력했다. 이 시기의 가르멜 회는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 교의가
아직 확정되기 전이지만 이 교의를 적극 지지했다. 후에 교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마리아 영성을 개발하여 수도회 명칭을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형제들’(Brothers of
the Most Blessed Virgin Mary of Carmel)이라 하였으며,
끊임없이 이 명칭을 수호하려는 노력을 했다.
셋째,
갈색 스카풀라는 성모님의 보호를 상징한다.
16세기에 이르러 정착한 관례로서 가르멜 회의 상징이 되었다.
나중에 가르멜 회 총장이 된 시몬 스톡 수사에게 성모님이 1251년
7월 16일에 발현하시어 스카풀라를 주시면서 그것을
착용하는 사람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다는 설도 있으나, 어떻게 도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이견이 많다. 그러나 스카풀라가 성모님의 보호를 의미한다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일치한다.
4. 8월 5일:
성모 대성전 봉헌(선택)
리베리오
교황 재위 시절(352-366년),
로마의 한 귀족 부부는 자녀가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늘 성모님께 자식을 구하는 기도를 드렸는데,
어느 날 꿈에 성모님이 나타나셔서 다음 날 에스퀼리노 언덕에 가보라고 하셨다.
언덕에 눈이 내려있을 터인데 그 자리에 성당을 세우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인
8월 5일에 가보니,
그 무더운 날씨에도 정말 눈이 내려 있었다. 성모님의
꿈속 발현은 같은 날 리베리오 교황에게도 있었고, 이 일로 인해 정말로 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마리아가 ‘천주의 모친’이라는 정의가 내려진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시스토 3세
교황(+440년)이 이 성당을 마리아께
봉헌했다. 이 성모 대성당(Santa Maria Maggiore)은
오늘날 서방 교회에서 마리아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성지에 속한다.
이
기념일 이면에 자리한 에페소 공의회의 천주의 모친(Theotokos)
용어를 보자. 최초로 이 용어를 사용한 사람은 로마의
성 히뽈리뚜스(+255)로 알려져 있다.
그 후,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428)는
자신의 그리스도론에 입각하여 마리아께 이 칭호를 드리기에 부당하다는 논리를 전개하였다.
네스토리우스에 따르면, 그리스도 안에는 두 가지 위격,
곧 천주성(로고스)과
인성(예수)이 있다는 의미에서,
천주 성자는 마리아의 아들(Kristokos)일
뿐이다. 431년 에페소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와 그 추종세력을 단죄하였다.
한편, 이 호칭을 승인하고 마리아께 천주의 모친
칭호를 공식적으로 부여했으며, 성 치릴로는 네스토리우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도 재차 이 점을 강조하였다. 에페소 공의회가 규범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면,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이를 명시적인 교의로 선포한 것이다.
마리아가 테오토코스인 dlb는 “말씀이 당신 안에서
그리고 당신을 통하여 사람이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성을 니니는 첫 순간부터
말슴의 위격 안에 천주성과 일치한 사람으로서 존재하셨다.
네스토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과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옹호했던 에페소 공의회 이후,
교황 시스토 3세는 천주의 모친에게 개선문을
지어드리는 심정으로 리베리오가 지은 성전을 중건하였다. 1964년
11월 12일,
교황 바오로 6세는 바로 이 성전에서 기도하신 후,
마리아께 “교회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드렸다.
5. 8월 22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의무)
이
기념일은
1953년 비오 12세 교황에 의해 5월
31일 그리스도 왕 축일(연중 마지막 주일,
대부분 11월)과
같은 의미(그래서 예전에는 ‘여왕이신 복된 동정 마리아’라는 이름이 있었다)로
지내도록 정해졌다. 전례가 개정되면서 최근에는 5월
31일을 성모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로 대체하고, 성모
승천 대축일(8월 15일)로부터
8일째 되는 8월 22일을
‘복되신 동정 마리아 모후’ 의무 기념일로 지낸다. 「마리아 공경」
6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의 기쁨은 7일 후 ‘여왕이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서 계속됩니다.
이 축일에는 영원하신 왕 곁에 좌정하신 엄위로운 여왕 마리아께서 어머니로서의 전구도 계속하심을
기념합니다.”
여왕
칭호가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고 또 전례에서 기념하게 된 것은
1954년, 비오 12세가
‘여왕이신 동정 성 마리아’ 축일(8월 22일)을
제정하면서부터이다. 이를 즈음하여 교황은 마리아의 왕다운 품위를 표현하는 중요한
문서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Ad Coeli Reginam」(1954년
10월 11일)교서이다.
마리아의
왕권은 예수 왕이신 그리스도의 품위에 참여하는 것이다.
1. 탁월성: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모든 창조물의
품위를 능가한다(천사보다 우위)
2. 구원의 효과를 얻게 하는 왕다운 힘: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그리스도 다음으로 탁월성과 완전에서 최상의 수준에 도달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드님 우리 구세주께서 인간의
생각과 뜻을 두고 행사하시는 권능에도 동참하신다.
3. 당신 아들과 성부께 중재하시는 힘: 독생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오른편에 앉아 계시는 마리아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신다.
6. 9월 15일,
십자가 현양 축일 다음날: 통고의 성모(의무)
마리아의
7가지 고통은 중세기에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는데, 1667년
마리아의 종 수도회가 이것을 받아들였다. 1814년,
비오 7세 교황은 나폴레옹 치하의 감옥에서 풀려나
돌아온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 날을 공포하였다. 성지 주일 전 금요일에
마리아의 7가지 고통의 축일로 지내오다가 오늘날은 폐지되었고,
의무 기념일로 남아있다. 오늘날은,
십자가 밑에 서 계신 마리아를 기리면서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 바로 다음날에 이 기념일을 거행한다.
“구세사의 결정적인 순간을 마음에 되새기고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당신 성자’ 곁에서 함께
수난 하시는 어머니를 경축하는 성모 통고 기념일이 있습니다.”(MC
7)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가 서있었다”(요한
19,25)라는 성서 말씀에 따라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밑에 서 있고자 하는 것이 옛 신자들의
기도이자, 기도의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중세의 성모 신심에서 가장 보편적인 것이었는데,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성자 곁에서 그 모친 마리아도 함께 수난 하셨다”는 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이어서 나온 시가 바로 저 유명한 “십자가 밑의 성모”(Stavat Mater)이다.
1482년,
다음과 같은 형식의 성모 칠고 묵상이 나타났고, 이
신심은 교황의 승인 아래 ‘성모 통고회’가 보존하고 있다.
1. 시메온의 예언 (루가
2,34-35)
2. 이집트로 피난하심 (마태
2,13-21)
3. 삼일 동안 예수를 잃으심 (루가
2,41-50)
4. 갈바리아로 오르심 (요한
19,17)
5. 예수,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으심
(요한 19,18-30)
6. 예수, 십자가에서 내리심 (요한
19,39-40)
7. 예수, 무덤에 묻히심 (요한
19,40-42)
7. 10월 7일:
묵주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무)
묵주기도의
기원을 살필 때,
저 멀리 동굴에서 은수자들이 기도의 횟수를 헤아리기 위해 사용했던 자갈 등을 생각할 수 있다.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기 위하여 동굴 속에서 생활했던 은수자들에게는 은둔처(동굴)에서
기도에 전념하기 위한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 있었다. 4세기 중엽 이집트의
바오로에 관한 5세기 문헌에 의하면 바오로가 매일 기도를 300번
하겠다고 정한 자신의 원칙대로 기도생활을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호주머니에
300개의 자갈을 넣고 있다가 기도를 한 번 할 때마다 하나씩 내던졌다고 한다.
아마도 성 파코미오(290년 경)의
공동체 후예라 생각된다.
한편
사도시대 이래 그리스도인들은 개인기도나 공동체기도를 할 때 시편을 사용했는데,
시편을 50편씩 세 부분으로 구분하여 기도에
사용하였다. 일찍이 아일랜드의 수도자들 역시 이 시편으로 기도했음을,
800년경의 캔터베리 수도원에서도 은인이나 동료 수도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시
50편씩 두 묶음을 기도한 것을 남긴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성 패트릭은 100편의 시로 기도하면서 처음과 끝에
무릎을 꿇었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 50편을
기도할 때엔 추운 곳에서 고행을 위하여 서서 기도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기도가
성 골롬바에의해 유럽에 전파되었다. 즉, 9세기
중엽부터 아일랜드에서 북부 이탈리아로 전해졌고 샤를마뉴 시대엔 풀다 지방에서도 밤샘기도를 할 때 이 기도를 바치게끔
건의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신자들은 대부분 문맹이었다.
성서는 소수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어서 일반 민초들이 라틴 시편을 전부 외우거나 봉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12세기에
이르러 시편 150편을 외우던 기도가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150번으로 간략하게 대체되었다.
도미니코회원들에게는
성모님께서 성 도미니코에게 알비파(12-13세기의
이단 종교 개혁자들)를 물리치기 위한 총알로 로사리오을 주셨다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이 로사리오 기도는 오늘날과 형태가 같지 않다.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성모송이 앞부분만 사용되었는데 1483년에
이르러 성모송 10번에 주님의 기도 한번으로 정착하였으며,
예수의 생애와 마리아에 대한 묵상 역시 오늘날과 같은 15단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15세기에 표준형태가
완성되면서 성모송 후반부와 각단의 후반에 영광송이 첨가되었고, 1569년 비오
5세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로 인준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1573년
교황 비오 5세는 레판토에서 투르크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감사 드리며
승리일인 10월 7일을 로사리오 축일로
정했다. 레판토 해전은 유럽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전쟁이었는데 그 전쟁에서 패하면
유럽은 이슬람으로 넘어가야 할 위기 상황이었고, 전력 상으로 기독교 군이 매우
불리하였다. 그래서 도미니코 수도회 출신이었던 교황 비오 5세는
전 유럽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장병들을 위한 묵주기도를 요청하였고, 성모님의
은총으로 그 전쟁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원래 한 수도단체(도미니코회)에서
시작되었으나 오늘날 전 교회에 널리 보급되어 가히 범 교회적이라 할 수 있다.”(MC
8)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이다.
신비란 인간인 우리로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드러난 진리’를 뜻하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느님의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며(에페
1,9; 3,9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활동과 사건’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로사리오의 ‘신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활동과 사건에 대한 의미를 성찰하는 것이다.
‘로사리오’라는
말은 일찍이 마리아에게만 사용된 것으로 유스티노(AC
165)와 같은 사도교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래서 묵주기도는 로사리오 그 자체에 대한 가치와 당신 아드님의 구원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역할을 성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황 바오로 6세는
그의 사도적 권고 「마리아 공경」에서 권고의 마지막을 삼종기도와 묵주기도에 관하여 할애하고 있다(40-55항).
또 교황은 삼종 기도를 “하느님 아들의 강생을 기념하면서 그의 고난과 십자가로 부활에 이르도록
기도하는 파스카 신비를 회상하게 하는 특징들로 이루어져 개정이 필요 없는 기도”(41항)라
하면서 로사리오 기도는 비오 12세가 이미 사용한 용어를 빌어 “요약된 복음”(42항)이라
하였다.
이
모든 말들을 통해서 볼 때,
묵주기도는 각자의 소망을 담는 청원과 아울러 그리스도인의 사도적 투신과 생활의 고양을 묵상하는
것이라 하겠다. 로사리오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 마리아를 통하여 강생하시고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구원계획을 성취하셨음을 교회 안에 환기시키고 성서 전체를 보는 기도이며,
마리아와 함께 하는 순례기도이다. 바오로
6세는 “로사리오의 신비가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연대기적 순서만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고 초대교회가 신앙을 선포하던 양식을 반영하며 성 바오로가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래한 ‘찬가’(2,6-11)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비를 케노시스(자기 비하),
죽음, 영광으로 표현하고”있다고 하였다.
특히 묵주기도는 주님 탄생 예고부터 파스카,
부활까지의 신비 안에 있는 마리아의 역할과 교회의 사명을 묵상하는 기도이다.
아울러 마리아의 중재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놓을 수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묵주기도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마리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로사리오의 각 단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고, 공적 생활을
하시고, 수난하시며, 부활하심을 묵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는 엄숙하고도 간구하는 자세가,
성모송을 외울 때는 찬미 가득한 서정적인 태도가,
영광송을 바칠 때는 흠숭과 신비들에 대한 묵상으로 관상적 상태를 유지하는 자세”(MC 50항)가
필요하고 “내적인 평화와 자유를 누려야 할 것이며, 내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려
평온한 마음으로 기도”(MC 55)해야 한다.
8.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자헌(의무)
많은
마리아 축일들이 그 역사성에 대해 모호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 기념일은 더 그렇다.
동방교회에서는 이 축일이 12대 축일 중 하나인 반면
서방에서는 기념일로 경축하고 있다. 유스티누스 황제가 예루살렘 성전 지역에
마리아를 드높이기 위하여 이른바 ‘새 교회’를 새워 543년 11월
21일에 축성하였으나 한 세기도 자나지 않아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붕괴되었다.
교황 세르지오(687-701) 이전까지는 이 축일이
로마에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세르지오의 4대
축일은 주의 봉헌(취결례), 성모 영보,
성모 영면(Dormition) 그리고 성모 성탄이다.
예루살렘의 ‘새 교회’ 밖에서 이 축일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콘스탄티노플의 교부
제르마노(715-730)이다. 제르마노가
이 축일에 대하여 유명한 두 편의 강론을 남긴 데 비해, 9세기에 이르러서는
강론도 많아졌고 축일 전례에 쓰인 성가곡들도 작곡되었다. 세르지오 전례 목록에
편입되지 않은데다 외경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서방에서는 이 축일이 아주 서서히 도입된 듯 하다.
그러나 9세기 이탈리아 남부의 수도원에서 시작하여
14세기에는 영국 교회로 전해졌고, 1373년 한
차례 아비뇽의 교황청에서 이 축일이 거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72년 교황 시스토 4세에 의해 전체 교회로
보급되었지만 교황 비오 5세 시절 20여
년 동안 제외되었고, 다시 1595년
시스토 5세에 의해 복구되었다.
「마리아
공경」8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외경적인 요소는 차치하더라도,
탁월하고 모범적인 가치를 보이고 있는 축일이 있는데,
이 축일들은 특히 동방에서 기원하여 유서 깊은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봉헌 축일은 교회 안에 내려온 오랜 전승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마리아의 출생과 성장 과정 등은 오직 3세기
초엽에 쓰인 외경 「야고보의 원복음」에만 수록되어 있다.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에게는 자식이 없었는데 안나의 슬픔을 보고 천사가 내려와 아이를 낳을 것이라 하자 안나를 아이를 낳기만 하면 주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리아가 두 살이 되었을 때,
요아킴이 안나에게 ‘주님에게 맹세한 대로 딸을 주님의 성전으로 데리고 갑시다.
주님이 화를 내서 우리 제물을 거절할까 두려우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안나는 ‘아이가 아버지 얼굴도 못 알아보면 안 되니까
1년만 더 기다려요’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요아킴이
‘그렇게 합시다.’라고 대답했다. 아이가
세 살이 되자, 요아킴이 ‘히브리인들의 정숙한 딸들에게 각자 등불을 켜들고 오라고
초대합시다. 아이가 주님의 성전에서 마음을 붙이고 친가에 돌아오지 않도록 합시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성전으로 올라갔다.
대사제가 마리아를 받아들여 축복하고는 ‘마리아, 주
하느님이 네 이름을 영원히 빛나게 했고, 이스라엘의 자녀들에게 너를 통해서 영원히
구원을 보여주었다’라고 말했다. 대사제가 마리아를 제대의 세 번째 계단에 내려놓자,
주님이 힘을 주어 마리아가 스스로 춤을 추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마리아를 사랑했다. 딸이 자기들에게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부모는 크게 놀라고 하느님을 찬미하면서 귀가했다.”(「야고보의
원복음」7, 1-8. 1)
이
이야기는 역사성이 없는 하나의 전설에 불과하다.
물론 소수의 학자들은 당시 어린이들이 성전에 봉헌되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마리아의 자헌에 대해서는 전설적인 요소 때문에 16세기의
짧은 기간 축일에서 누락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설 속에 담긴 신학적 주제,
마리아가 완전히 하느님께 속한 인물이라는 차원과 마리아의 성성(聖性)이
내재되어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마리아가 하느님의 소유라는 내용은 안나가 그
어떤 부정한 것도 마리아에게 범접치 못하게 했다는 사실과 비록 어리지만 성전에서 보인 마리아의 행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서방교회의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대축일에 비견되는 동방의 주요
축일로 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두 축일은 서로 보완적이다.
교회는
전례력에서 마리아가 바로 ‘주님의 성전’이라는 개념을
8월 5일의 성 마리아 대성전 봉헌 선택 기념일을
통하여 가르쳐주고 있다. 마리아는 참으로 하느님께서 선택하시어 거처로 삼으신
은총이 충만한 분이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응답하여 은총을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거처로 삼으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림으로써 강생의 신비를 받아들여 자기 안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이
기념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마리아의 성덕’과 ‘우리의 성화’를 되새기게 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거룩함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여러 생활양식과 여러 직책의
모든 사람들이 닦고 있는 성덕은 동일한 것이니, 그들은 누구나 다 하느님의 성령이
인도하시는 대로, 성부의 음성을 따르며 성령과 진리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를
흠숭하고, 가난하시고 겸손하시며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의 영광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다.”(LG 41)
공의회의 이 가르침은 우리에게 마리아의 생활에 대한 요약을 보여준다. 그리고
천국을 향한 여정에 있는 우리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