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안의 마리아
최경선
박사
들어가는 말
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교의 내용을 알려면 성경과 성전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마리아’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찾아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성경의 초점이 이스라엘을 이끄시는 하느님(구약성경)과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신약성경)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많지 않은 내용들이지만 우리는 구약과
신약에서 아주 핵심적인 몇 가지 내용들을 찾아낼 수 있다.
구약성경에서 마리아의 신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 깊이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구약 안에서 간절히 기대되고 있었던 메시아,
즉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들을 마주할 때, 메시아의 어머니가 함께 예언되고
있는 구절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성모 마리아에 관한 성서적 이해를
구약성경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신약성경 안에서도 성모 마리아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 뒷전에 머물러 있다.
그렇지만 늘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가운데 비중 있게 진술되고 있다.
그리 많지 않은 기록들이지만, 성모 마리아의 중요한
역할들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I. 구약성경
구약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성모 마리아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어렴풋한 암시를 주고 있는 부분들이 있다.
그에 대해 교회헌장(LG) 55항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구약이 서술하는 구원의 역사 속에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의 내림이
천천히 준비되고 있다. 이 초기의 문서들은 교회 안에서 낭독되고 보다 상세하고
완전한 계시의 빛으로 이해되는 바와 같이 그 문서들은 구세주의 모친인 한 여인의 모습을 점차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이 빛 속에서 본다면 죄에 떨어진 원조에게 약속된 뱀에 대한 승리 속에 이미 예언적으로 그
여인의 모습이 암시되어 있다.”
우리는 구약성경 중에서 특별히 창세기
3장15절(원복음),
이사야서 7장14절(임마누엘
예언), 미카서 5장 1절-3절(베들레헴에서의
메시아 탄생), 그리고 ‘시온의 딸’에 관한 예언들과 상징들을 통해 성모 마리아에
관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1. 창세기 3장 15절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이 성경 구절을 두고 원복음(原福音)
또는 원시복음(原詩福音)이라고도
한다. 원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구원을 언급하는 ‘최초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악이 선과 마찬가지로 영원하지 못하리라는 기쁜 소식이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모친에 관한 최초의 언급이기도 하다. 이 원복음에는 종말론적
전투가 암시되고 있다. 뱀으로 상징되는 악마와 ‘여자의 후손’으로 상징되는
메시아적 인물과의 대결이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개별적인 단일 인물을
가리키기보다는 집합적인 의미로서 그 이후의 많은 후손들을 가리킬 수 있다. 즉 그
‘후손’은 아담과 하와 이후, 악의 세력과 투쟁하여 승리를 거둔 많은 성조(聖祖),
성인(聖人)들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의 흐름은 악의 힘을 대표하는 단일 존재,
사탄과 대결하여 그를 마지막으로,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는 특정한 단일 인물을 지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이 특정한 개별 인물을 예수 그리스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 예를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이 세상의 지배자’와 맞서는 하나의 투쟁으로 이해하고 이 투쟁이 갈바리아 산상에서 예수님의 승리로
끝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요한묵시록도 사탄을 옛 뱀으로 간주하고,
그 뱀을 그리스도에 의해 무찔러진 악마로 이해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 큰 용, 그 옛날의 뱀,
악마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자, 온 세계를
속이던 그자가 떨어졌습니다. 그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그의 부하들도 그와 함께 떨어졌습니다.”(묵시
12,9)
그렇다면 ‘여자의 후손’이라는 구절에서 이 ‘여자’는 누구인가?
본문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면 그 ‘여자’는 하와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와 이외의 다른 여인이 등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성서 구절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일종의 신탁(神託, divine oracle)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 자신이 친히 말씀하시는 이 신탁에서 ‘여자’라는
단어는 단순히 하와만이 아니라, 그녀의 후손인 어느 여인을 지시할 수 있다.
그리고 ‘뱀의 후손’은 악마요, ‘여자의 후손’은
메시아를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의
투쟁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짓밟음을 뜻한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에서 ‘여자’라는 단어는 악마를 의미하는 뱀의 머리를 짓밟는 자의 어머니인 여인이다.
악마의 머리를 짓밟는 자의 어머니로서 이 여인은 내용상으로 하와와 거리가 멀다.
악마를 쳐 이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확신한다면,
이 여인이 예수의 어머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 전승은 이 여인을 성모
마리아로 해석하고 마리아를 ‘제2의 하와’ 또는 ‘새 하와’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은 마리아가 첫 번째 하와의 범죄로 손상된 것을 복구하였다는 의미에서 교부들이
마리아에게 즐겨 적용하였던 표현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2의
아담’ 또는 ‘새 아담’이라고 부르는 데 기인한다. 예컨대,
로마 5,12-21에서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담과 대조하면서 예수를 ‘제2의 아담’으로 부르고 있다.
이러한 바오로의 해석을 적용하여, 하와가 아담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불순종케 하고 범죄 하게 했다면, ‘제2의
하와’인 마리아는 예수를 하느님께 순종케 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데 협력한 셈이다.
성경의 첫째 권 창세기에 언급되고 있는 이 원복음이 신비롭게도 성서의 마지막 권인 요한 묵시록에도 언급되고 있다.
첫째 권과 마지막 권의 훌륭한 조화가 우연만은 아니다.
요한 묵시록 12장에는 이 원복음이 실현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2. 이사 7,14: 임마누엘의 어머니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oth)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
(Álmah)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 (Ìmmanuél)이라
할 것입니다.
이 두 번째 구절은 ‘임마누엘 예언’이라고도 한다.
이 예언의 말씀은 시리아의 이스라엘 침공으로 다윗 왕조가 멸망할 위험에 놓였을 때,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의 왕 아하즈에게 전해진 것이다.
이사야는 아하즈에게 하느님의 징표를 구하라고 권고한다.
즉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다. 아하즈는 이
권고를 묵살한다. 자신의 정책과 정치노선을 고집한다.
여기서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그 징표를 손수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 예언을 두고 신학자들은 많은 논쟁을 벌였다.
쟁점은 두 가지다. 히브리어 ‘알마’(Álmah')라는
단어의 의미와 ‘징표’(oth)라는 단어의 의미다.
우선 ‘알마’라는 단어가 엄밀한 의미에서 반드시 ‘처녀’를 일컫는 용어는 아니다.
‘처녀’를 의미하는 단어는 ‘베툴라’(Bertulah')가
있다. ‘알마’는 일반적으로 ‘젊은 여인’을 가리킨다.
젊은 여인은 반드시 처녀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처녀를 배제하지도 않는다. 이 결혼 적령기의 젊은 여인은,
이미 결혼한 여인일 수도 있고 처녀일 수도 있다. 이
단어가 성서의 여러 곳에서 처녀를 지시하는 단어 ‘베툴라’와 같이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예컨대 창세 24,16.43; 탈출
2,8; 시편 68,25 등이다.
결국 ‘알마’는 상당히 넓은 의미로 쓰인 포괄적인 단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단어가 이사야 7,14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 학자들의 여러 가지 이견이 있다.
우선 이사 7,14의 ‘알마’는 반드시 ‘처녀’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교회 전승은 이 ‘알마’(Álmah')라는
단어를 분명히 ‘처녀’로 보고 있다.
70인역 희랍어 번역본도 이 ‘알마’를 ‘처녀’(parthenosfh)로
번역하고 있으며 불가타 라틴어 번역본도 ‘처녀’(virgo)로 번역하고 있다.
마태오도 자신의 복음에 그대로 인용하면서 ‘처녀’(parthenos)로
번역하고 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마태오는 이 예언을 인용하면서 이 예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음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마리아의 예수 동정 잉태를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마태
1,18-2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마태
1,18-25)
루카 역시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면서 마리아의 예수 동정 잉태를 전하고 있다.
이사야 예언 자체만으로는 어렴풋했던 하느님의 계시가 마태오와 루카 복음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시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26-37)
두 번째 쟁점인 ‘징조’(oth),
또는 ‘징표’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이 예언은
결코 평범한 사건이 아닌 특별한 사건이라는 어조를 지니고 있다. ‘징표’(기적)로
제시될 수 있어야 하는 사건이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것을 메시아적 징표로 이해한다. 그래서
임마누엘의 탄생은 평범한 다른 출생과 구별되며, 동정녀로부터의 탄생에 더 비중을
싣는 것이다.
‘알마’(Álmah',
젊은 여인)는 임마누엘의 어머니로서 구원의 중재자가
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히즈키야의 어머니는 그 ‘알마’의 예형(豫型)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히즈키야 왕으로 말미암아 불완전하게 부분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동정 잉태의 신비 안에서 완전하게, 결정적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도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다.
그 임마누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만큼 그 ‘알마’는 성모 마리아를 지시한다.
그리고 이사야의 징표는 단지 그 여인이 아이를 낳는 역할 만이 아니라,
임마누엘의 구원 역사에 함께 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아울러 지시하고 있다.
3. 미카 5,1-3: 베들레헴에서의 메시아 출생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 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언자 미카(기원전
738-700년경)는 예언자 이사야보다는 약간 늦지만
거의 동시대에 예언 활동을 한 인물이다. 그의 예언은 신약성서에도 자주 등장하며(마태
2,5-6; 요한 7,42) 예수님 역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인용하셨다(마태 10,35-36).
미카서는 미래에 오실 메시아의 탄생이 다윗 가문으로부터 이루어진다는 나탄의 예언(사무
하 7,1-15)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예언은 메시아의 출생지와 더불어 그의 모친을 가리키고 있다.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는 표현에서 ‘여인’은 이사 7,14의
‘알마’를 암시한다. 즉, 저 유명한
이사야의 임마누엘 예언의 메아리이다. 이 예언에서도 볼 수 있는 이스라엘의 해방,
새로운 왕권, 혹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한 여인과 그
여인의 아들로부터 시작된다는 이상(理想)은
창세 3,15 즉 원복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미카서가 예언하는 메시아적 인물은 원복음이 암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의 세력과 투쟁한다(미카
2,12). 그 악의 세력은 이스라엘의 적일 뿐 아니라 하느님의 적이기도 하다(미카
5,8; 5,11).
4. 미카서 4,1-14; 스바니야서
3,14; 즈카르야서 9,9; 요엘서
2,21-27: ‘시온의 딸’과 새로운 백성의 탄생
마지막 때에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주님의 산으로.......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주님이 시온 산에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그들을 다스리리라........
(미카 4,1-14)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스바
3,14)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즈카
9,9)
....... 시온의 자손들아, 주 너희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여라. 주님이 너희에게 정의에 따라 가을비를 내려주었다(23).......
(요엘 2,21-27)
‘시온’은 예루살렘의 옛 이름이다.
특히 잘 방어할 수 있도록 높이 솟은 지역이었다(2사무
6,12). 다윗은 그곳에 ‘계약의 궤’를 모셨고(사무
하 6,12), 솔로몬은 그 북쪽에 하느님 성전을 짓고 ‘계약의 궤’를 모셨다(열왕
상 6장). 명실 공히 ‘시온 산’은
하느님의 ‘좌’가 되었다. 바빌론 유배 이전에는 시온이 예루살렘과 동의어로 쓰였다.
스바니야서는 이 용어로 기를 못 펴는 가난한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스바
3,12-13). 흩어졌던 그들이 하느님의 승리로 다시 모이게 된다(스바
3,20). 이제 ‘시온의 딸’은 다시 세워진 하느님의 백성을 일컫는 이름이 되고 있다.
즉 모든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유배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들에게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이 나오게 된다.
이것은 하느님의 어김없는 약속이다. 여기에 고대 이스라엘의 희망이 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연결된 ‘시온의 딸’은 고통스러운 출산을 겪기는 하지만 출산 후
맞이하게 될 커다란 기쁨에 초대되고 있다(즈카 9,9;
요엘 2,21-27). 왜냐하면 이들은 곧 승리와
구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온의 딸’은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시온의 딸’은 메시아 왕권을 수립하는 데 있어서 주 하느님의 공동 협력자로 나타나고 있다.
이사야는 ‘시온의 딸’의 후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이사
49,20: 54,1-3; 66,7-8).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자주 간택된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자체가 여성으로서, 동정녀로서,
애인으로서, 아내로서, 또 어머니로서
묘사된다.
교회 전승은 처녀이면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서 이러한 ‘시온의 딸’과 관련된 예언들이 실현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베들레헴에서 기쁨의 메시아 출산, 그리고 갈바리아
산상에서 메시아 백성의 고통스러운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예수님
자신의 설명을 통하여 갈바리아 산상의 십자가를 하나의 출산으로 이해하고 있다: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요한
16,21)
이런 의미에서 교부들만이 아니라 현대의 많은 신학자들도 마리아를 시온의 딸과 연관시키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구약성서가 말하고 있는 ‘시온’ 또는 ‘시온의 딸’의 성서적 상(像)을
총괄하여 요약하고 있는 셈이다. 성모 마리아는 메시아를 기다리는 ‘시온의 딸’이요
그 실현이다. 그리고 ‘시온의 딸’은 성모 마리아의 예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5. 마리아의 예들과 상징들
성모 마리아에 관해 언급하는 구약성경의 자료들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교회가 마리아에게 적용하는 상징적 모델들은 많이 있으며 이런 것들은 「성모 호칭기도」에서도
발견된다.
1) 그리스도교 전례에 적용된 모델들
a. 불타는 떨기나무(탈출 3,2)
모세가 본 불꽃이 이는데도 타지 않는 덜기처럼 당신의 동정성은 온전하십니다.
천주의 모친이여.......(천주의 모친 대축일
성무일도 저녁기도 제3후렴)
모세가 하느님을 만난 그 떨기나무는 타고 있으면서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두고,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였지만 그 동정성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훌륭한
상징이다.
b. 기드온의 양털 뭉치(판관
6,37-38)
주님 당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양털의 물기처럼 동정녀로부터 특별한 방식으로 태어나시면서 성서에 기록한 것을
성취하셨습니다.......(천주의
모친 대축일 성무일도 저녁기도 제2후렴)
기적적으로 하늘로부터 이슬을 흠뻑 적신 기드온의 양털 뭉치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가득히 받아 하느님의
아들을 얻게 됨을 상징한다.
c. 계약 궤(탈출 25,8-16)
그들이 나를 위하여 성소를 만들게 하여라.......
그들이 아카시아 나무로 궤를 만들게 하여라.......
그리고 나서 내가 너에게 줄 증언판을 그 궤 안에 넣어라(탈출
25,8-16)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십계명판을 보관하고 다니던 ‘계약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상징하였다.
교회 전승은 성모 마리아야말로 인간이 되신 하느님이 현존하셨던 궁전으로 이해한다.
특히 ‘계약 궤’를 모시고 유다 고을을 향하여 기뻐 춤추는 다윗의 모습과 오베데돔 집에서의
3개월 체류(사무 하 6,5-15)가
유다 산골로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와 비교되고 있다. 마리아를 맞이하여
뱃속에서 기뻐 뛰는 엘리사벳 태중의 요한과 마리아의 3개월 체류가 유사하다고 본다(루카
1,39-56).
d. 아가서의 신부(新婦)(아가서
2,2; 4,7-8)
마리아여,
당신은 온전히 아름다우시고 원죄에 물듦이 없나이다(성모의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 성무일도 제2저녁기도 제1후렴.
참조: 아가서 2,2“아가씨들
사이에 있는 나의 애인은 엉겅퀴 사이에 핀 나리꽃 같구나.”).
나의 애인이여,
그대의 모든 것이 아름다울 뿐 그대에게 흠이라고는 하나도 없구려./
나와함께 레바논에서, 나의 신부여,.......(아가
4,7-8)
아가서의 백합처럼 정결한 신부에 관한 시구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대축일(12월
8일) 성무일도 제2저녁기도
첫 후렴으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는 마리아를 흠잡을 데 하나 없는 하느님의 정결한
신부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e. 닫혀 진 정원, 봉해진 우물(아가
4,12)
그대는 닫혀 진 정원,
나의 누이 나의 신부여 그대는 닫혀 진 정원, 봉해진
우물(아가 4,12)
교회 전승은 이 성경 구절에서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에게만 독점되어 있는 존재라는 의미의 동정성을 읽어내고 있다.
특히 교부 베드로 크리솔로고(Petrus Chrysologus)는
신랑이신 하느님께서 육화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내려오는 순간 이루어진 것으로 해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