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Mary Page)

마리아 교의

최경선 박사

 *. 서론

 

 이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교의’라는 말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 좋다. ‘교의’(敎義, 옳은 가르침, dogma)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가르치다’(dokeo)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성서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라고 정의하였다.

 

 하나의 진리가 선포되기 위해서는,

 1. 그것이 성서성전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2. 교회의 교도권이 가르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교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의는 역사 안에 살아있는 교회가 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신앙의 의식을 결정적으로 표명하고 신도들에게 믿을 교리로 선포할 때 성립된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역사 안에서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 교의이며, 이는 교회가 그 시대의 용어와 사상을 이용하여 가르치고 표현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교의, 즉 믿을 교리는 네 가지가 있다. 마리아의 동정(평생 동정), 모성(천주의 모친), 무죄한 잉태(원죄 없으신 잉태), 그리고 승천에 관한 것을 말한다. 이제 이 네 가지 교의의 성립과정과 그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I. 마리아의 동정성

 

성서적 근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 마태 1,18-25(요셉에게 계시), 루가 1,26-38(마리아에게 계시)

- 이사야의 예언에서부터 동정(童貞)은 하느님의 위업을 드러내는 징표(‘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다’: 루가 1,37)였다. 인간이 지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하느님이 요셉에게나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해 계시하신 것이다.

- 교부들은 마리아의 동정으로부터 하느님의 신비(神秘)를 알아보았다.

- 교회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어야 할 동정의 모습을 마리아에게서 보고 있다. (신경: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1. 동정성의 성서적 의미

 

- 고대 종교들은 ‘처녀성’ 또는 ‘동정성’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의 여신들은 ‘처녀신’으로 불렸다. 그것은 여신들의 영원한 젊음, 생생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비교: 유교전통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 ‘영혼결혼식’, ‘몽달귀신’.-불교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 구약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처녀성’은 불임과 동일시되었고, 그것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자손의 번영을 축복(창세 15,5)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굴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창세 30,23; 1사무 1,11; 판관 11,37)). 2. 그러나 ‘깨끗함’을 의미하는 ‘동정성’은 결혼준비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창세 24,16; 판관 19,24). 또한 이미 구약 시대에도 실제로 ‘동정’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결혼을 단념하였다(예레 16,2). 유딧이나 드보라처럼 순수한 종교적 동기로 ‘동정’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다(유딧 8,4-6; 16,22; 판관 5,7). 그리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자주 ‘처녀’로 불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지켜야 할 충실성을 표현했던 것이다(아모 5,2; 이사 37,33; 애가 1,15; 2,13).

 

- 신약에서도 ‘동정’은 혼인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 또는 하느님과의 혼인을 위해 ‘동정’으로 ‘깨끗함’을 보존해야 한다(1 고린 11,2; 에페 5, 27).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처녀’로 부르고 있다(에페 5,25). 이 동정성은 그 혼인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종말론적 차원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동정성’의 종교적 의미는 마리아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마리아는 굴욕적인 처지로서의 ‘동정’을 축복으로 바꾸었다. 동정을 보존하면서도 ‘하느님의 아들’을 탄생시킨 마리아의 ‘동정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하느님의 신비로운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나는 사건이 되고 있다. 바오로는 스스로 ‘동정’으로 살면서 신자들에게 동정적 삶을 권고하며(1고린 7,18), 동정의 중요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 남편이 없는 여자나 처녀는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1고린 8,32-34)

 

2. 마리아 동정성의 근거

 

- 교회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4가지 점을 강조한다.

마리아는 신체적인 온전함을 보존하셨다.

마리아는 예수 탄생 이전이나 이후나 요셉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으셨다.

종교, 신앙의 차원에서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마리아의 전적인 봉헌은 하느님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자발적인 의지와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 여기서 생기는 의문: 예수님의 출생이 남자와의 성 관계없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 출생이 어떻게 마리아의 신체적 온전함을 보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다음에 성서적 근거와 함께 살펴본다.

 

1) 성서적 근거

- 성서는 마리아의 예수 탄생 이전의 동정성만을 계시해 주고 있다. 예수 탄생 이후의 동정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 출산 이후, 출산 중의 동정은 교부들의 증언과 교회 전승에 근거한다.

 

A. 이사 7,14: 논란이 있지만, 이 구절을 동정 탄생의 예언으로 보고 있다. 우선 단어 ‘Almah'(알마)는 ‘젊은 여인’ 또는 ‘결혼 적령기의 여인’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처녀’ 또는 ‘동정녀’로도 번역할 수 있다. 또한 그 사건이 하나의 표징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동정 출산’이 더욱 의미가 있다. 이 구절에서 가리키는 여인은 마리아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마태오 복음사가에서부터(마태 1,23) 2차 바티칸공의회(LG 55)까지 이어진다.

B. 루카 1,26-28. 34-35: 예수 탄생은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 약혼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며, 분명히 그때 마리아는 처녀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적 사건이다.

C. 마태 1,18-25: 이사 7,14 을 상기시키며, 예수의 탄생이 요셉과 성적 관계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예언적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

D. 요한 1,13: 신자들이 세례를 통하여 혈육으로나 욕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가 아니라 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그들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더더욱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동정 탄생임을 암시해준다.

 

2) 교회 전승의 가르침

 

A. 출산 이전의 동정성

- 출산 이전의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유스티노, 이레네오 교부들에게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이냐시오에게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이 이루신 신비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 신성의 보증이 되고 있다. 유스티노는 창세 3 15절과 이사야 7 14절을 인용하면서 마리아의 동정성이 이냐시오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증명하는 한 가지 징표로 이해하고 있다. 이레네오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교회 신앙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동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이 동정 탄생이라는 사실은 예수를 한낱 인간으로 보려는 이단자들 외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교회의 정통 신앙의 한 가지 조항이 되었다.

- 최근 신학은 새로운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연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역사적 전승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성령의 계시인지, 또는 마리아나 요셉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사야 예언을 근거로 복음사가들이 묵상한 결론으로서의 증언인지 묻고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교회는 역사적 전승의 입장에 선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증언하는 마태오와 루가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사화들’은 서로 다른 전승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른 전승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이루고 있는 그 하나가 바로 마리아의 동정 잉태이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의 출산 이전의 동정성은 역사적 전승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B. 출산 이후의 동정성

- 이 부분은 논쟁이 심각하였다. 이 부분에 관해 신약성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성서로부터 본질적인 암시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교회의 옛 전통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성화되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 클레멘스는 외경 『야고보 복음』을 인용하면서 평생 동정을 주장하였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의 모친에게 걸 맞는 모습으로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첫 번째 동정이라면, 마리아는 모든 여성의 첫 번째 동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타나시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겼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마리아에게는 예수 외에 다른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옹호하였다. 에프렘은 마리아의 동정이 인간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에게는 쉬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후 예루살렘의 치릴로, 디디모,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도 앞선 교부들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특히 대 바실리오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적합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신자들은 마리아께서 한 순간이나마 동정이기를 멈추었다고 느끼지 않는 ‘신자들의 신앙감’(Sensus Fidelium)이 그것을 증명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하나의 기적이며, 모세가 체험한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타 없어지지 않는 가시덤불에 비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마리아는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 동정을 허원 하였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아우구스티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탄생 이전에 정화 또는 성화 되었으며, 동정으로 사는 수도자의 모범이 되신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서방에서는 암브로시오가 이러한 모범으로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예로니모는 당시 이단들과 이방인들이 제기하는 마리아의 동정성 문제에 성서적으로 하나하나 반론을 제기하였다. 당시 반대자 엘비디오는 성서를 인용하여 마리아의 출산 이후의 동정을 거부하였다. 제기된 성서 구절들은 “예수님의 형제들”(마르 3,31-35, 병행구절인 갈라 1,19 ), “아들을 낳을 때까지”(마태 1,25), “첫아들”(루카 2,7) 등이다. , “첫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를 낳은 다음에 둘째, 셋째 아들을 전제한다는 것,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동정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정식으로 결혼생활을 한 것이라는 점, 그 형제들로 나타나는 야고보, 시몬, 요셉이 마리아가 요셉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자녀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예로니모는, 당시 “형제”(Adelphos)라는 단어는 매우 광의적이어서 반드시 그들이 마리아의 자녀들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첫아들’이란 표현 역시 둘째, 셋째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을 처음 연 사실을 지적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외아들에게도 사용하였다. -때까지”라는 표현도 그 사건과 그 시점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 다음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로니모는 이처럼 성서의 모든 구절들을 해설하면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요셉마저도 마리아로 인하여 동정을 지켰다고 강변하였다... 러한 교부들의 이론을 그 후 모든 교부들과 교회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용하였다. 마침내  교회 교도권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선언하였다. 649년 라테란 공의회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고 있다. 그 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LG 52).

 

C. 출산 중의 마리아의 동정

- 이것은 사실상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이에 관해서도 성서의 진술을 찾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성서의 공백을 메워주는 외경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야고보 복음』이다. 이 외경은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는 순간에도 동정이 보증되었다는 것을 살로메라는 산파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둘째, 생물들 가운데 단성으로서 출산하고 번식하는 경우가 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보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모는 삼위일체의 성자 탄생의 신비에 비유하면서, 고통 없이 출산하셨으며, 출산 중에도 동정이심을 주장하였다. 대 바실리오는 오리게네스처럼 짝짓기 없이도 알을 낳는 새를 비유로 설명하면서, 예수는 출산하면서도 그 동정성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도 출산 중의 동정을 고통 없이 출산하였다는 점을 들어 주장하고 있다. 이코니아의 안필로키오는 에제 44,2의 ‘잠긴 문’을 비유로 들면서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을 옹호하고 있다. 암브로시오는 마리아의 동정성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의 육화에 타당하다는 이유로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잠긴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듯이 어머니 마리아의 동정성에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잉태되고 출산되셨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이는 신앙에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이후 첼리오 세둘리오,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도 아우구스티노의 비유를 인용하여 출산 중의 동정을 언급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노 이후 마리아의 출산 중의 동정을 포함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은 모든 교부들에게 문제없이 수용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공의회를 통해서 선언되었다. 그리고 393년 로마 시노드와 406년의 밀라노 시노드는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을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던 한 수도자를 단죄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승천 교의 ’를 선포하면서 아울러 출산 중의 동정을 언급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교회헌장>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모와 성자의 이 결합은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또 어머니의 완전한 동정성을 감소시키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성화 하신 당신 맏아들을 목동들과 박사들에게 보여주시던 성탄 때에 그 결합이 나타났다”(LG 57).

 

3. 마리아의 동정에 대한 신학적 성찰

- 오늘날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기본 입장 세 가지:

자연과학적인 입장: 과연 고등동물이 단성 출산을 할 수 있느냐?

종교학적 입장: 고대 종교들 안에는 기적적인 출산 관념이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리스도교도 이러한 신화적인 기적적 출산의 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

성서의 해석학적 입장: 마리아의 동정에 관해서는 마태오와 루가 두 복음사가만 언급을 한다. 바오로, 마르꼬, 요한 다른 곳에서는 침묵을 한다. 이 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간략한 해답:

1) 성서나 교부들도 마리아의 동정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즉 교회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선포하는 기반은 자연적 기반이 아니라 초자연적 기반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루가 1,37)는 신앙이 그 기반이다. 과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뛰어넘는 주장이다.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에 관해서 교회 전승은 두 가지 형식을 취한다. 즉 고통 없는 출산이며, 마치 잠긴 문을 통과하듯이(요한 20,26) 처녀성을 손상하지 않고 통과하는 출산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최근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 마리아의 동정성은 마치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감소시키지 않듯이, 마리아의 모성을 손상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는다. 교회 전승은 마리아가 온전히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동정녀’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 출산 중에 산고(産苦)가 없음은 동정성의 본질도, 모성의 본질도 아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산고를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육체의 영성화’를 의미하는 동정성에 관한 증언이 된다. ) 동정성의 본질은 윤리적․영적․성서적 차원에 속한 것이며, 출산 중 고통이 없다는 것은 마리아의 충만한 동정성, 즉 육신과 영혼의 동정성․생리적․신체적 차원의 동정을 포함하여 본질적인 영적․윤리적 차원의 동정성까지도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도 거부도 하지 않고 있다. <교회헌장> 57항은 마리아의 “완전한 동정성”을 언급하되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정확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삼간다.

 

2) 이미 교부들도 지적한 바 있지만, 마리아는 여신이 아니다. 고대 종교들이 믿고 있던 여신으로서 퀴벨레, 이스타르, 디아나 등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신과 인간 여성의 성적 결합으로 탄생하는 반신반인이나 영웅과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구별된다. 이교 설화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기적적 탄생’이지 ‘동정녀 탄생’이 아니다. 성서와 교회가 주장하는 마리아의 동정 탄생은 이방인들이 주장하는 신의 성적 개입도 배제한다.

 

3) 이미 교부들의 논의 속에서 성서 주석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고, 거기에 나름대로 답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성서의 해석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성서와 교부들의 마리아론을 참고할 수 있다.

 

4)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온당하지 못하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신비이다. 하느님의 신비이다. 동정은 그 개인의 가장 내밀한 비밀이다. 하느님의 계시 밖에서는 마리아만이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 루가 복음사가는 복음 서문에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가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루가 1,2-3).

 

5) 사도 바오로가 지적한 것처럼(1고린 7,29-31), 하느님께 온전한 봉헌을 동정으로 이해할 때 진실한 의미의 동정을 바로 마리아에게서 볼 수 있다.

 

4. 결론: 마리아 동정성의 의미와 가치

 

-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에게 주어진 영광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마리아 자신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신론), 예수가 누구이신지(그리스도론),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교회론, 인간학), 그 목표(종말론)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1) 신론적 의미: 자연을 넘어서는 기적적 사건으로서 하느님의 능력과 더불어 그분의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전능하신 하느님을 계시해 준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간 역사에 깊이 참여하였음을 드러내 준다. 한 여인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의미로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 대상으로서 하느님의 지고하신 거룩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2) 그리스도론적 의미: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동정으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예수의 아버지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교부들과 교회 전통이 늘 강조하였듯이 엠마누엘이신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한 가지 징표이기도 하다.

 

3) 인간학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성에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야 했던 인내심, 용기, 희생 등의 덕행적 요소도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 편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학적 의미가 있다.

 

4) 교회론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어야 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그 현실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교회의 모범이다.

 

5) 종말론적 의미: 무엇보다도 교회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실현해야 하는 그 목표이다. 성서는 그러한 모습을 암시해 준다. 하느님 나라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된다”(마태 22,30). 마리아의 동정성은 성()을 초월하는, 보다 발전된 인간성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 마리아의 동정성의 이러한 복합적 의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무죄한 잉태, 승천 등과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II. 마리아의 모성

 

1. 마리아론의 기반으로서의 신적 모성(Theotokos)

 

-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다루는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의 한 분야이다. 성서가 마리아에 관한 진술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 마리아에 관한 진술을 통해 예수가 누구인가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