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Mary Page)

마리아 교의

최경선 박사

 *. 서론

 

 이 주제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교의’라는 말이 무엇인지 보는 것이 좋다. ‘교의’(敎義, 옳은 가르침, dogma)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가르치다’(dokeo)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였다. 사전에서는 이 말을 성서성전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라고 정의하였다.

 

 하나의 진리가 선포되기 위해서는,

 1. 그것이 성서성전에 있는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하고

 2. 교회의 교도권이 가르치는 것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가르침이 교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교의는 역사 안에 살아있는 교회가 한 문제에 대하여 자기 신앙의 의식을 결정적으로 표명하고 신도들에게 믿을 교리로 선포할 때 성립된다. 복음이 지니고 있는 진리를 역사 안에서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표현하고 고백하는 것이 교의이며, 이는 교회가 그 시대의 용어와 사상을 이용하여 가르치고 표현하는데서 생기는 것이다.

 

 마리아에 관한 교의, 즉 믿을 교리는 네 가지가 있다. 마리아의 동정(평생 동정), 모성(천주의 모친), 무죄한 잉태(원죄 없으신 잉태), 그리고 승천에 관한 것을 말한다. 이제 이 네 가지 교의의 성립과정과 그 의미를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I. 마리아의 동정성

 

성서적 근거: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 마태 1,18-25(요셉에게 계시), 루가 1,26-38(마리아에게 계시)

- 이사야의 예언에서부터 동정(童貞)은 하느님의 위업을 드러내는 징표(‘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일이 없다’: 루가 1,37)였다. 인간이 지성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하느님이 요셉에게나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해 계시하신 것이다.

- 교부들은 마리아의 동정으로부터 하느님의 신비(神秘)를 알아보았다.

- 교회는 하느님께 전적으로 봉헌되어야 할 동정의 모습을 마리아에게서 보고 있다. (신경: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1. 동정성의 성서적 의미

 

- 고대 종교들은 ‘처녀성’ 또는 ‘동정성’을 매우 신성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아르테미스, 아테나 등의 여신들은 ‘처녀신’으로 불렸다. 그것은 여신들의 영원한 젊음, 생생한 생명력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지녔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비교: 유교전통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요소. ‘영혼결혼식’, ‘몽달귀신’.-불교에서는 조금 다르지만-)

 

- 구약1.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반적으로 ‘처녀성’은 불임과 동일시되었고, 그것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자손의 번영을 축복(창세 15,5)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 굴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다(창세 30,23; 1사무 1,11; 판관 11,37)). 2. 그러나 ‘깨끗함’을 의미하는 ‘동정성’은 결혼준비를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창세 24,16; 판관 19,24). 또한 이미 구약 시대에도 실제로 ‘동정’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결혼을 단념하였다(예레 16,2). 유딧이나 드보라처럼 순수한 종교적 동기로 ‘동정’을 지킨 사람들도 있었다(유딧 8,4-6; 16,22; 판관 5,7). 그리고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을 자주 ‘처녀’로 불렀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지켜야 할 충실성을 표현했던 것이다(아모 5,2; 이사 37,33; 애가 1,15; 2,13).

 

- 신약에서도 ‘동정’은 혼인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스도, 또는 하느님과의 혼인을 위해 ‘동정’으로 ‘깨끗함’을 보존해야 한다(1 고린 11,2; 에페 5, 27). 그런 의미에서 교회를 ‘처녀’로 부르고 있다(에페 5,25). 이 동정성은 그 혼인이 완성되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고 있으므로 종말론적 차원에 속한 것이다. 이러한 ‘동정성’의 종교적 의미는 마리아에게서 그 절정에 이른다. 마리아는 굴욕적인 처지로서의 ‘동정’을 축복으로 바꾸었다. 동정을 보존하면서도 ‘하느님의 아들’을 탄생시킨 마리아의 ‘동정성’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하느님의 신비로운 능력이 더욱 잘 드러나는 사건이 되고 있다. 바오로는 스스로 ‘동정’으로 살면서 신자들에게 동정적 삶을 권고하며(1고린 7,18), 동정의 중요한 의미를 밝히고 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 남편이 없는 여자나 처녀는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주님의 일에 마음을 쓴다.(1고린 8,32-34)

 

2. 마리아 동정성의 근거

 

- 교회는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4가지 점을 강조한다.

마리아는 신체적인 온전함을 보존하셨다.

마리아는 예수 탄생 이전이나 이후나 요셉과 성적 관계를 맺지 않으셨다.

종교, 신앙의 차원에서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가 하느님께 온전히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러한 마리아의 전적인 봉헌은 하느님의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마리아의 자발적인 의지와 동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 여기서 생기는 의문: 예수님의 출생이 남자와의 성 관계없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 출생이 어떻게 마리아의 신체적 온전함을 보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을 다음에 성서적 근거와 함께 살펴본다.

 

1) 성서적 근거

- 성서는 마리아의 예수 탄생 이전의 동정성만을 계시해 주고 있다. 예수 탄생 이후의 동정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데, 출산 이후, 출산 중의 동정은 교부들의 증언과 교회 전승에 근거한다.

 

A. 이사 7,14: 논란이 있지만, 이 구절을 동정 탄생의 예언으로 보고 있다. 우선 단어 ‘Almah'(알마)는 ‘젊은 여인’ 또는 ‘결혼 적령기의 여인’으로 번역될 수도 있고 ‘처녀’ 또는 ‘동정녀’로도 번역할 수 있다. 또한 그 사건이 하나의 표징적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동정 출산’이 더욱 의미가 있다. 이 구절에서 가리키는 여인은 마리아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마태오 복음사가에서부터(마태 1,23) 2차 바티칸공의회(LG 55)까지 이어진다.

B. 루카 1,26-28. 34-35: 예수 탄생은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하기 전 약혼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며, 분명히 그때 마리아는 처녀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은 기적적 사건이다.

C. 마태 1,18-25: 이사 7,14 을 상기시키며, 예수의 탄생이 요셉과 성적 관계없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예언적 사건임을 밝히고 있다.

D. 요한 1,13: 신자들이 세례를 통하여 혈육으로나 욕정으로나 사람의 욕망으로가 아니라 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나는 것이라면, 그들의 원형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더더욱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동정 탄생임을 암시해준다.

 

2) 교회 전승의 가르침

 

A. 출산 이전의 동정성

- 출산 이전의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해서는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유스티노, 이레네오 교부들에게서 이미 발견되고 있다. 이냐시오에게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이 이루신 신비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못하는 유다인들에게 예수 신성의 보증이 되고 있다. 유스티노는 창세 3 15절과 이사야 7 14절을 인용하면서 마리아의 동정성이 이냐시오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메시아성을 증명하는 한 가지 징표로 이해하고 있다. 이레네오는 마리아의 동정성을 교회 신앙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동정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의 탄생이 동정 탄생이라는 사실은 예수를 한낱 인간으로 보려는 이단자들 외에는 아무런 문제없이  받아들여졌으며, 교회의 정통 신앙의 한 가지 조항이 되었다.

- 최근 신학은 새로운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과연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역사적 전승에 의존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성령의 계시인지, 또는 마리아나 요셉의 기억에 의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사야 예언을 근거로 복음사가들이 묵상한 결론으로서의 증언인지 묻고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교회는 역사적 전승의 입장에 선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를 증언하는 마태오와 루가의 ‘예수의 어린 시절에 관한 사화들’은 서로 다른 전승에서 유래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다른 전승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이루고 있는 그 하나가 바로 마리아의 동정 잉태이다. 그런 점에서 마리아의 출산 이전의 동정성은 역사적 전승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확신하는 것이다.

 

B. 출산 이후의 동정성

- 이 부분은 논쟁이 심각하였다. 이 부분에 관해 신약성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렇지만 성서로부터 본질적인 암시를 얻을 수 있다는 입장이 대부분이다. 교회의 옛 전통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리아가 성화되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미 클레멘스는 외경 『야고보 복음』을 인용하면서 평생 동정을 주장하였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의 모친에게 걸 맞는 모습으로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옹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인간의 첫 번째 동정이라면, 마리아는 모든 여성의 첫 번째 동정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아타나시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왜 어머니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맡겼겠느냐고 반문하면서 마리아에게는 예수 외에 다른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옹호하였다. 에프렘은 마리아의 동정이 인간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지만 전능하신 하느님에게는 쉬운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 후 예루살렘의 치릴로, 디디모,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오도 앞선 교부들의 이론을 따르고 있다. 특히 대 바실리오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위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적합한 것이었으며, 무엇보다도 신자들은 마리아께서 한 순간이나마 동정이기를 멈추었다고 느끼지 않는 ‘신자들의 신앙감’(Sensus Fidelium)이 그것을 증명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은 하나의 기적이며, 모세가 체험한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타 없어지지 않는 가시덤불에 비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마리아는 천사가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는 순간 동정을 허원 하였다고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은 아우구스티노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 탄생 이전에 정화 또는 성화 되었으며, 동정으로 사는 수도자의 모범이 되신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서방에서는 암브로시오가 이러한 모범으로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예로니모는 당시 이단들과 이방인들이 제기하는 마리아의 동정성 문제에 성서적으로 하나하나 반론을 제기하였다. 당시 반대자 엘비디오는 성서를 인용하여 마리아의 출산 이후의 동정을 거부하였다. 제기된 성서 구절들은 “예수님의 형제들”(마르 3,31-35, 병행구절인 갈라 1,19 ), “아들을 낳을 때까지”(마태 1,25), “첫아들”(루카 2,7) 등이다. , “첫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를 낳은 다음에 둘째, 셋째 아들을 전제한다는 것,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동정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정식으로 결혼생활을 한 것이라는 점, 그 형제들로 나타나는 야고보, 시몬, 요셉이 마리아가 요셉과의 결혼생활에서 얻은 자녀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예로니모는, 당시 “형제”(Adelphos)라는 단어는 매우 광의적이어서 반드시 그들이 마리아의 자녀들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첫아들’이란 표현 역시 둘째, 셋째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을 처음 연 사실을 지적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바쳐야 하는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외아들에게도 사용하였다. -때까지”라는 표현도 그 사건과 그 시점을 강조하는 것이지, 그 다음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로니모는 이처럼 성서의 모든 구절들을 해설하면서, 마리아뿐만 아니라 요셉마저도 마리아로 인하여 동정을 지켰다고 강변하였다... 러한 교부들의 이론을 그 후 모든 교부들과 교회가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수용하였다. 마침내  교회 교도권은 553년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선언하였다. 649년 라테란 공의회는 이 입장을 재천명하고 있다. 그 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이르기까지 변함없는 신앙의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LG 52).

 

C. 출산 중의 마리아의 동정

- 이것은 사실상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이에 관해서도 성서의 진술을 찾아보지 못한다. 이러한 성서의 공백을 메워주는 외경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야고보 복음』이다. 이 외경은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는 순간에도 동정이 보증되었다는 것을 살로메라는 산파를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오리게네스는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둘째, 생물들 가운데 단성으로서 출산하고 번식하는 경우가 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원죄 없는 잉태를 보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알렉산드리아의 디디모는 삼위일체의 성자 탄생의 신비에 비유하면서, 고통 없이 출산하셨으며, 출산 중에도 동정이심을 주장하였다. 대 바실리오는 오리게네스처럼 짝짓기 없이도 알을 낳는 새를 비유로 설명하면서, 예수는 출산하면서도 그 동정성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니싸의 그레고리오도 출산 중의 동정을 고통 없이 출산하였다는 점을 들어 주장하고 있다. 이코니아의 안필로키오는 에제 44,2의 ‘잠긴 문’을 비유로 들면서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을 옹호하고 있다. 암브로시오는 마리아의 동정성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그분의 육화에 타당하다는 이유로 출산 중에도 동정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 후 잠긴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듯이 어머니 마리아의 동정성에 아무런 해도 주지 않고 잉태되고 출산되셨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이는 신앙에 속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 이후 첼리오 세둘리오, 베드로 크리솔로고 등도 아우구스티노의 비유를 인용하여 출산 중의 동정을 언급하고 있다. 테르툴리아노 이후 마리아의 출산 중의 동정을 포함한 마리아의 평생 동정성은 모든 교부들에게 문제없이 수용되었다. 이러한 입장은 공의회를 통해서 선언되었다. 그리고 393년 로마 시노드와 406년의 밀라노 시노드는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을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던 한 수도자를 단죄하였다. 교황 비오 12세는 ‘승천 교의 ’를 선포하면서 아울러 출산 중의 동정을 언급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의 <교회헌장>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성모와 성자의 이 결합은 그리스도를 잉태하실 때부터 그리스도 죽으실 때까지 나타난다....... 또 어머니의 완전한 동정성을 감소시키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성화 하신 당신 맏아들을 목동들과 박사들에게 보여주시던 성탄 때에 그 결합이 나타났다”(LG 57).

 

3. 마리아의 동정에 대한 신학적 성찰

- 오늘날 마리아의 동정성에 관하여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는 기본 입장 세 가지:

자연과학적인 입장: 과연 고등동물이 단성 출산을 할 수 있느냐?

종교학적 입장: 고대 종교들 안에는 기적적인 출산 관념이 상당히 보편적이다. 그리스도교도 이러한 신화적인 기적적 출산의 관념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

성서의 해석학적 입장: 마리아의 동정에 관해서는 마태오와 루가 두 복음사가만 언급을 한다. 바오로, 마르꼬, 요한 다른 곳에서는 침묵을 한다. 이 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 간략한 해답:

1) 성서나 교부들도 마리아의 동정이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받아들였다. 즉 교회가 마리아의 동정성을 선포하는 기반은 자연적 기반이 아니라 초자연적 기반이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루가 1,37)는 신앙이 그 기반이다. 과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뛰어넘는 주장이다. 마리아의 출산 중 동정에 관해서 교회 전승은 두 가지 형식을 취한다. 즉 고통 없는 출산이며, 마치 잠긴 문을 통과하듯이(요한 20,26) 처녀성을 손상하지 않고 통과하는 출산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최근의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한다. ) 마리아의 동정성은 마치 그리스도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감소시키지 않듯이, 마리아의 모성을 손상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는다. 교회 전승은 마리아가 온전히 ‘어머니’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동정녀’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 출산 중에 산고(産苦)가 없음은 동정성의 본질도, 모성의 본질도 아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산고를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은 ‘육체의 영성화’를 의미하는 동정성에 관한 증언이 된다. ) 동정성의 본질은 윤리적․영적․성서적 차원에 속한 것이며, 출산 중 고통이 없다는 것은 마리아의 충만한 동정성, 즉 육신과 영혼의 동정성․생리적․신체적 차원의 동정을 포함하여 본질적인 영적․윤리적 차원의 동정성까지도 성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론에 대하여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도 거부도 하지 않고 있다. <교회헌장> 57항은 마리아의 “완전한 동정성”을 언급하되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정확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삼간다.

 

2) 이미 교부들도 지적한 바 있지만, 마리아는 여신이 아니다. 고대 종교들이 믿고 있던 여신으로서 퀴벨레, 이스타르, 디아나 등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신과 인간 여성의 성적 결합으로 탄생하는 반신반인이나 영웅과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구별된다. 이교 설화에서 관건이 되는 것은 ‘기적적 탄생’이지 ‘동정녀 탄생’이 아니다. 성서와 교회가 주장하는 마리아의 동정 탄생은 이방인들이 주장하는 신의 성적 개입도 배제한다.

 

3) 이미 교부들의 논의 속에서 성서 주석학적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고, 거기에 나름대로 답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성서의 해석 문제는 앞에서 언급한 성서와 교부들의 마리아론을 참고할 수 있다.

 

4) 진실을 왜곡하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온당하지 못하다. 마리아의 동정성은 신비이다. 하느님의 신비이다. 동정은 그 개인의 가장 내밀한 비밀이다. 하느님의 계시 밖에서는 마리아만이 그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 루가 복음사가는 복음 서문에 그러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가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루가 1,2-3).

 

5) 사도 바오로가 지적한 것처럼(1고린 7,29-31), 하느님께 온전한 봉헌을 동정으로 이해할 때 진실한 의미의 동정을 바로 마리아에게서 볼 수 있다.

 

4. 결론: 마리아 동정성의 의미와 가치

 

- 마리아의 동정은 마리아에게 주어진 영광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마리아 자신에게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누구이신지(신론), 예수가 누구이신지(그리스도론), 그리고 하느님 백성의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교회론, 인간학), 그 목표(종말론)가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1) 신론적 의미: 자연을 넘어서는 기적적 사건으로서 하느님의 능력과 더불어 그분의 자유로움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전능하신 하느님을 계시해 준다. 전능하신 하느님이 인간 역사에 깊이 참여하였음을 드러내 준다. 한 여인이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의미로서의 마리아의 동정성은 그 대상으로서 하느님의 지고하신 거룩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2) 그리스도론적 의미: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동정으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예수의 아버지가 오직 하느님이시라는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교부들과 교회 전통이 늘 강조하였듯이 엠마누엘이신 예수의 신성을 드러내는 한 가지 징표이기도 하다.

 

3) 인간학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었던 한 인간의 지고한 사랑과 충실성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동정성에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야 했던 인내심, 용기, 희생 등의 덕행적 요소도 담겨있다. 이런 점에서 인간 편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인간학적 의미가 있다.

 

4) 교회론적 의미: 마리아의 동정성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교회가 온전히 하느님께 속해 있어야 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충실해야 한다는 그 현실적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은 교회의 모범이다.

 

5) 종말론적 의미: 무엇보다도 교회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마지막으로 실현해야 하는 그 목표이다. 성서는 그러한 모습을 암시해 준다. 하느님 나라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처럼 된다”(마태 22,30). 마리아의 동정성은 성()을 초월하는, 보다 발전된 인간성의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 마리아의 동정성의 이러한 복합적 의미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 무죄한 잉태, 승천 등과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II. 마리아의 모성

 

1. 마리아론의 기반으로서의 신적 모성(Theotokos)

 

-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다루는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의 한 분야이다. 성서가 마리아에 관한 진술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가 누구인가를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 마리아에 관한 진술을 통해 예수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를 통해 마리아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도 가능하다. 바로 예수의 어머니라는 점 때문에 마리아의 모든 사명특권이 이해되는 것이다. 예수가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았다.

 

2.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가르침

 

1) 구약성경

- 메시아의 모친에 관해서 구약성서의 3가지 구절을 들 수 있다.

창세 3,15: 이 부분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했던 옛 뱀(악마)을 짓밟는 메시아와 그 어머니를 예시해 주고 있다. 이 구절은 요한 묵시록 12(여자와 용)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이사 7,14: 여기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 임마누엘과 그의 어머니가 예언되고 있다.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그 어머니인 ‘알마’(Almah)는 동정으로 해석된다. 또 그것이 임마누엘의 탄생의 징표(Signum)가 되고 있다. 이 예언은 마태1,23(‘동정녀가 잉태하여...’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에서 인용되고 있다.

미카 5,1-4; 이사 7,14: 여기에서 메시아의 탄생지 베들레헴과 그 어머니로서의 여인이 등장한다. 미가서는 이사 7,14의 예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며, 루카 2,4.7.11.15에 나오는 예수의 탄생지로서 ‘다윗의 고을 베들레헴’이 메시아의 표징이 될 다윗 후손이 태어날 곳으로 지적된다.

 

2) 신약성경

- 복음서들은 한결같이 예수를 나자렛 사람 마리아의 아들로 소개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마리아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면서 예수가 인간인 한 여인으로부터 태어난다는 사실만을 전하고 있다. 마태오와 루가는 예수의 어린 시절을 소개하면서 마리아 모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점은 공관복음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마르 3,31-35; 6,3; 마태 12,46-50; 13,55-56; 루카 3,23; 4,22; 8,19-21; 11,27; 사도 1,14). 요한 복음사가도 ‘여인’이라는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면서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요한 2,3.5;6,42; 19,25-26).

 

3) 교회 전승

- 마리아가 혈연적 의미에서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은 교회 전승에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마리아가 여느 어머니와 달리 ‘거룩하신’ 어머니라는 점에서는 하느님의 선택, 하느님의 은총이 요구된다. 하느님의 계획과 선택, 그리고 거기에 호응한 인간 마리아의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응답의 결과인 것이다.

- 교부들과 교회 전승은 마리아에게 보여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성경에서 발견 한다:

* “은총이 가득한 분”(루카 1, 28)

*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분”(루카 1,28)

* “모든 세대가 행복하다고 하는 분”(루가 1,48)

* “성령을 받으신 분”(루카 1,35)

- 그러나, 마리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기 때문에만 거룩한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의 태도로써 보여준, 그분의 신앙과 순종과 겸손(루카 1,48.45)에 있어서도 ‘거룩함’의 칭호가 합당하다.

- 사실 성서에는 “주님의 어머니”(루카1,43)라는 표현은 나타나지만,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는 발견되지 않는다. 루가 복음에서 ‘주님’이라는 표현은 ‘하느님’께 드리는 칭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드린 새로운 칭호 ‘하느님의 어머니’는 여신 숭배로 치닫는 이단들에게 마리아를 ‘여신’으로 간주하게 할 위험을 안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이 칭호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논쟁 주제가 되었다.

 

3. 신적 모성에 관한 교의

 

1) Theotokos(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의 유래

- 마리아를 Theotokos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3세기부터이다. 일부 전승에 의하면, 히폴리토, 오리게네스에 의해서 이미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렸다고 전한다.

- 3세기경부터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기도문 Sub tuum praesidium(‘천주의 성모여 당신의 보호에’)에서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고 있다.

- 그 후 아타나시오, 치릴로, 바실리오를 비롯한 가파도치아의 교부들도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특히 니싸의 그레고리오와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정통 신앙의 기준이 된다고까지 주장한다. 라틴 교부 암브로시오는 희랍어 ‘Theotokos'를 라틴어 Mater Dei로 번역하여 사용했다.

- 논쟁의 발단이 된 것은 유명한 강론가였던 프로클로가 마리아에 관한 강론에서 마리아에게 ‘Theotokos'라는 칭호를 사용하면서부터이다. 때마침 당시 그 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던 네스토리오 주교가 이 칭호에 대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논쟁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치릴로가 프로클로를 적극 지원하면서 더 확대되었다. 이 논쟁은 에페소 공의회(431)에서 중요 의제로 다루어졌다. 이 공의회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2) Theotokos 칭호의 공식적 선언: 에페소 공의회(431)

- 배경: 428(혹은 429) 12 23(당시 콘스탄티노플에서는 이 날을 예수 탄생예고 축일로 지냄), 콘스탄티노플 주교좌 성당에서 강론가 프로클로가 동정 성모 마리아를 찬양하는 강론을 하면서, 마리아에게 Theotokos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 자리에 네스토리오(428년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됨)가 참석하였다. 그는 예수의 인성을 더욱 강조하였던 안티오키아 학파 출신으로, 프로클로의 이 칭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런 생각은 그가 알렉산드리아의 치릴로 주교에게 보낸 서한에 잘 나타나고 있다. ... 마리아를 Theotokos보다는 Christotokos로 부르는 것이 더욱 정확합니다...” 이 편지에서 보듯이 이 문제는 그리스도론적 문제에서 발단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결합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다.

- 전개: 치릴로는 “육을 따라서 마리아로부터 태어나신 분이 바로 말씀이요, 그리스도는 신성화된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하느님-사람”이라는 입장이었다. 편지로 해결을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치릴로 주교는 교황 첼레스티노 1(422-432)의 결정을 요구하였으며, 네스토리오도 그렇게 하였다. 430년 로마에서 시노드가 열렸고, 여기서 네스토리오의 의견에 반대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으로도 해결은 되지 않았다. 마침내 에페소에서 430년부터 공의회가 열렸고, 431 6 22일 저녁, 치릴로와 그 지역 주교들은 네스토리오를 단죄하였다. 그런데, 그 후 26일에 도착한 안티오키아 주교를 비롯한 그 지역 주교들은 치릴로를 단죄하였다. 3일 후 황제 특사가 도착하였고, 7 10일에 교황 특사가 도착하여 공의회를 속개하였다. 여기서 네스토리오가 단죄되었는데, 공의회 참석을 계속 거부한 안티오키아의 주교와 그 지역 주교들 또한 단죄되었다. 8, 황제 특사는 치릴로와 네스토리오 모두를 감금하였다. 황제는 네스토리오를 수도원으로 보냈고, 치릴로를 자신의 교구 알렉산드리아로 돌려보냈다. 결국 모든 주교들의 합의를 보지 못한 이 결정은 433년 안티오키아의 주교 요한이 모든 동방 주교의 이름으로 동정녀 마리아를 Theotokos로 부르는 것을 수락함으로써 종결되었다.

- 그 후: 451년 칼체돈 공의회는 이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리고 제 2,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마침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3) Theotokos 칭호의 교의적 의미

- 이 칭호는 그리스도론적 논쟁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밀접한 결합을 그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치릴로를 비롯한 교부들이 주장하는 ‘속성의 교환’(Communicatio idiomatum)은 마리아가 낳은 예수 그리스도는 온전한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온전한 인간이시라는 것이다.

- 이 교의의 의미를 세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 마리아의 ‘하느님의 어머니’ 칭호는 결코 마리아가 신성을 지녔다든지, 여신이라든지, 또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마리아로부터 유래한다는 것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4.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신학적 성찰

-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육화 사건은 우선 하느님이 처음부터 주도권을 잡고 이를 관철시켰음을 의미한다. 둘째로 이 하느님의 주도권은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와 그 응답을 도외시하지 않는다. 즉 인간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단순한 도구로 사용되지 않는다. 마리아는 인격적으로 응답하셨다. 즉 살아있는 도구로 작용한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적극적 응답이 마리아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게 하였다는 것이다.

- 성서, 특히 요한복음은 이런 관계를 제자 요한과 마리아 사이의 새로운 아들-어머니 관계로 드러내고 있다(요한 17,25-27).

- 더욱이 예수는 하느님-인간이신 분이므로, 마리아의 모성은 다른 여느 어머니와 다르다. 그래서 교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른 것이다.

 

1) 인간적 모성의 요소들

- 모성이란 어머니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성립된다. 분명히 어머니와 자식은 닮기 마련이다. 자녀들은 상당한 부분을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단지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심리적인 요소, 환경적인 요소도 무시하지 못한다.  예수는 많은 것을 마리아로부터 영향 받았음에 틀림없다.

- 성서는 그 점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루카 2,51-52) 이것은 예수의 인격적인 면모에서 마리아의 인격적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2) 마리아의 신앙 순종과 그 신학적 의미

- 예수께서는 단순히 혈연적 관계로서의 부모와 형제자매의 관계보다 우선하는 새로운 관계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일’로 규명하였다.

- 루가 복음사가는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과 그분에 대한 철저한 신뢰였다는 것을 ‘탄생 예고 사건’에서 전하고 있다. 마리아의 이러한 신앙은 어린 예수를 양육하고 보호하는 과정(마태오와 루가 복음의 예수의 어린 시절 사화)에서만이 아니라, 예수의 공생활에서도 여전히 드러나고 있다(요한복음의 가나의 혼인잔치). 그리고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도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시는 모습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사도1, 14). , 마리아의 신앙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 특히 탄생 예고 순간의 마리아 신앙응답(Fiat)은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마리아가 동참함을 의미한다. 교부들은 이런 의미에서 창세 3,15을 적용하여, 마리아를 하와와 비교하면서 ‘제2의 에와’ ‘새 에와’ 즉 ‘산 자들의 어머니’로 부른다.

구원받아야 할 모든 인류를 대표하는 의미가 있다.

마리아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어머니가 되게 하였던, 마리아 생애의 중심이었음을 의미한다. 성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은총이 가득하신 분”(루가1,28), “믿어서 복되신 분”(루가 1,45).

 

3) 구원 역사 안에서 신적 모성의 의미

-이미 교부들과 공의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부르는 것이 마리아의 신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 “마리아는 아드님의 공로로 말미암아 뛰어나게 구원되고 아드님과의 불가분의 관계로 긴밀히 결합되었으며 천주 성자의 모친이 되는 직무와 품위를 갖추시었다...(LG 53).

- 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제8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신적 모성의 의미를 제시한다.

A) 그리스도론적 의미: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마리아의 모든 신비와 사명의 중심축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받으셨다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신비는 그분의 동정성을 감소하기는커녕 그분이 성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예수가 탄생하고 출산한 순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온 생애 동안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다. 특히, 성서는 마리아가 어머니로서 아들의 모든 구원 활동과도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자렛에서, 베들레헴에서, 가나에서, 예루살렘에서, 그리고 갈바리아 산상에서 아들과 함께 일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교회헌장>은 이러한 마리아의 신적 모성을 성서가 “주님의 종”으로 요약하여 표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57). “야훼의 종”의 모습을 실현하고 있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곁에서 ‘주님의 종(루가1,38)으로 협력하였다는 것이다.

B) 교회론적 의미: <교회헌장>은 마리아가 교회의 예형이라는 점을 인식하였다. 무엇보다도 예수를 낳고 세상에 전해 주어야 하는 교회의 사명은 마리아처럼 동정적이어야 하며 동시에 어머니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따라서 교회의 역사적 사명의 실현을 바로 마리아에게서 보고 있다. 마리아의 신적 모성이 교회를 위한 덕행의 모범일 뿐 아니라 종말론적 교회의 모상이기도 하다.

 

5. 마리아의 모성에 관한 종합적 요약

 

1)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유사성을 부인하지 못한다.

2) 마리아의 아들 예수는 그리스도요,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에페소 공의회, 특히 교부 치릴로).

3) 마리아는 육체적이고 혈연적인 의미에서만 예수의 어머니가 아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점에서 종말론적 차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신다.

4) 종말론적 차원의 마리아의 모성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고 있고, 또 따라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도 형제자매, 어머니의 관계를 형성한다.

5)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 육화의 신비를 더욱 드러내고 있다(그리스도론적 의미).

6)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한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계획되고 선택되었음을 의미하며, 또 한 인간이 하느님께 이러한 부르심에 성실하였음을 의미한다(인간학적 의미).

7)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절정의 시기, 즉 “때가 찼을 때”(갈라 4,4) 불림을 받아 구원적 역사 안에 깊이 동참하였음을 의미한다. 구원 사업에 있어서 하느님께 협력한 적극적 도구였음을 드러낸다(구원론적 의미)

8)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하느님의 소명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동참함으로써 모든 믿는 자들이 걸어가야 할 여정의 모범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마리아를 ‘교회의 어머니’로 부르기도 한다(교회론적 의미).

9) 마리아의 신적 모성은 마리아론의 중심축으로서, 모든 마리아의 특권과 사명이 유래하는 원천으로서, 마리아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이다(마리아론적 의미).

 

III.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과거에는 ‘무염시태’(無染始胎)로 불렸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는 1854 12 8일 교황 비오 9세의 회칙 「한량없으신(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Ineffabilis Deus)에 의해 선포되었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는 잉태된 첫 순간부터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전능하신 하느님의 유일무이한 은총의 특전으로 말미암아 원죄에 물들지 않고 보존되었다”(DS2803,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 32)

(참고: 루르드에서 1858 2 11일부터 7 16일까지 18회에 걸쳐 성모마리아가 발현, 소녀 벨라뎃다에게 보이심. 마지막 발현 때에 자신을 일컬어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는 말을 함.)

  이 신앙 교의의 출발점은:

1.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품위가 신성성(神性性)에 비례해야 한다는 입장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즉 하느님의 아들이 살()을 물려받고, 하느님의 성령이 거주하신 그 태중은 무죄하고 흠 없이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2. 그리고 여기에 마리아의 모범적인 신앙을 비롯한 윤리적 덕성들이 가세되었다.

3. 아울러 마리아 축일의 전례와 대중 신심도 이 교의를 선포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1.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교의 선포의 역사적 과정

 

1) 교부들의 견해

  초기 교부들은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전력을 다하여 변호하고 해설하였다. 그러다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선포하는 데 마리아의 탁월한 신앙과 성덕이 도움을 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여기에서, 외경들이 상당히 영향을 주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아담의 원죄와 관련하여 해설하는 가운데 에와-마리아의 대조가 도움을 주었다.

유스티노: 처음으로 에와의 불순명과 마리아의 순명을 대비.

이레네오: 유스티노의 에와-마리아 대조를 더욱 심화시킨다.

히폴리토: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태중에 모셨다는 육화의 신비 자체에서 마리아 육신의 정결을 인식하고 있다.

오리게네스: 모든 제자들이 십자가의 예수를 두고 도망친 것에 비해 마리아가 십자가 곁에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용기를 높이 평가하며, 마리아는 신앙의 어둠을 이겨내고 그 정상에 오르셨음을 인식하고 있다.

아타나시오: 육화의 신비와 관련하여 마리아의 신적 모성으로부터 마리아의 동정성, 완벽한 덕성과 무죄함을 이해하고 있다.

에프렘 부제: 육화의 신비로부터 마리아의 아름다움을 완벽한 동정성과 무죄함으로 표현.

디디모: 모든 세대가 찬양할 것이라는 <마리아의 노래>에서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것은 마리아의 고귀한 덕성인 동정성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한다.

바실리오: 신앙의 어둠을 이겨낸 마리아는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된다는 점을 강조.

니싸의 그레고리오: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셨다는 점을 강조.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오: 마리아가 하느님께 동정으로 자신을 봉헌하고 하느님으로부터 성화의 은총을 받음으로써 깨끗해졌다는 것을 주장함으로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를 선포하는데 더욱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였다.

암브로시오를 비롯한 서방교부들: 동방교부들과 달리 마리아의 신앙의 어둠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암브로시오는 하느님 흠숭과 마리아의 공경을 구별하면서도 마리아의 완벽한 신앙, 겸손, 침묵, 용기 등 온갖 성덕을 열거하며 모든 믿는 이들의 모범으로 제시. 또한 마리아를 에와뿐만 아니라 사제 즈가리야와도 대조시키고 있다. 마리아는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동정이심을 강조한다. 아우구스티노(원죄는 부부 행위로부터 물려받는 것이라고 이해) 역시 마리아의 완벽한 무죄함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원죄로부터의 면제에 대해서는 주저하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느 누구도 원죄로부터 면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구원은 원죄로부터의 사함이요,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얻는 것이며, 그분의 구원의 보편적 중재 능력으로부터 어느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안치라의 테오도토는 마리아가 하느님 말씀의 육화를 위한 합당한 준비를 위해 원죄로부터 보호되었음을 주장한다.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특별한 은총으로 충만하였다는 것이다. 첼리오 세둘리오는 시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마리아가 에와의 죄스러운 줄기로부터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보존하는 ‘가시 속에 핀 꽃’이라는 비유를 사용하며 그분의 무죄한 깨끗함을 표현한다. 교황 대 레오는 마리아의 무죄함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보존된 특권으로 이해하고 있다. 안티오키아의 세베로, 사룩의 야곱 등은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함과 관련해서, 그분의 중재로 인하여, 또 마리아의 성덕으로 말미암아 완벽한 무죄성을 강조하였다.

이후 교부시대 말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교부들은 마리아의 무죄함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후기 교부들에게서 마리아는 무죄함을 넘어서 아름다우신 분으로 묘사된다. 로마노 멜로데는 마리아를 예수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양으로 묘사한다. 익명의 찬미가 <아카티스토스>는 마리아를 하늘의 천사들보다도 거룩하고 복되신 분으로 찬양한다.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하느님의 선택에 근거하여 마리아를 하늘의 옥좌에까지 오르신 분으로 묘사한다. 이시도로에게 마리아는 ‘바다의 별’이요, ‘성령의 성소’이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낳으셨고 또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는 마리아에게 ‘온전히 거룩하신 분’(Pahaghia)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크레타의 안드레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위해 당연히 그러한 준비가 필요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티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에게 자신의 죄를 정화해 줄 것을 간구 하기까지 한다. 요한 다마쉐누스에게서도 마리아는 ‘티 없이 깨끗한(panamomos) 최고의 창조물’ ‘흠 없는 하느님의 신부’로 이해되었다.

 

2) 중세 시대 신학자들의 견해

 

  서방교회는 중세 초기에 이르러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출산하기 위하여 합당하게 무죄하고 깨끗하며, 성덕에서도 완벽했음을 주장하면서도, 아우구스티노의 원죄 이론에 강한 영향을 받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섣불리 주장할 수 없었다. 그것을 그리스도 구원의 보편적 능력을 삭감하는 것으로 간주하였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둔스 스코투스이다. 그는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제가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중재 능력을 삭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마리아가 원죄로부터 면제받은 것 역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총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제에 관해 다음 세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1)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결코 한순간도 원죄의 지배하에 있지 않게 하실 수 있다. 2) 마리아를 어느 한순간만 원죄의 지배하에 있게 하실 수 있다. 3) 어느 시기가 지난 다음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성화 하실 수 있다. 이 세 가지 가능성에서 모든 것을 다 이루실 수 있는 하느님은 과연 무엇을 선택 하실까 질문하고, 하느님은 가장 좋은 것을 마리아에게 이루셨음을 확신한다.

  둔스 스코투스 이후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한 주장은 더욱 강세를 띠었다. 이 논쟁은 토마스아퀴나스의 도미니꼬회 회원과 둔스 스코투스의 프란치스코 회원 간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교도권은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고 중립적 자세를 취하였다. 예를 들면, 교황 시스토 4가 회칙을 반포하여 더 이상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하여 논쟁하거나 상대를 서로 단죄하지 말라고 한 것을 들 수 있다.

  한편 사회적 분위기는 신학적 논쟁과는 달리 ‘마리아의 신심 시대’라고 부를 만큼 성모 공경이 대중적이었다. <삼종기도>를 중심으로 <성모송>이 널리 애용되었으며, 비르지타 성녀에 의하여 마리아의 고통에 관한 신심이 새롭게 보급되었다. 마리아의 덕성이나 특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쓰인 성모의 생애에 관한 책들이 많이 발간되었다. 마리아는 본받아야 할 모범이라기보다 기적적인 도움을 주는 분으로 이해되는 분위기였다.

 

  3) 근대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 논쟁과 선포

- 근대에 이르러 유럽 세계는 그리스도교 중심이었던 중세와 달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 흑사병, 아라비아의 침략, 교황의 아비뇽 유수 등 정치 사회적 사건이 사회를 불안하게 함.

탈 교회의 움직임으로 인본주의 사상이 보급되었으며, 종교개혁자들 속출.

에라스무스는 지나치게 미신적 경향을 보이는 마리아 신심을 혹평하였다. 죄를 지으려 하면서도 그 일이 잘되도록 성모께 도움을 청하는 비윤리적 작태를 고발.

트리엔트 공의회: 종교개혁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개최된 이 공의회는 그

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그 당시 그토록 논쟁이 되고 있었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하여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두 가지 의견으로 엇갈린 이 논쟁은 잠재워지지 않았다.

대중신심: 개신교의 개혁에 반발하여 가톨릭의 대중신심은 더욱더 마리아 신심으로 향하였다. 독일의 피터 카니시우스(+1570), 프란시스 수아레즈(+1617), 로베르토 벨라르미노(+1621) 등을 중심으로 마리아가 찬양되었다. 18세기에 지성주의, 계몽주의도 일어났는데, 대중신심은 그에 대한 반동으로 신비주의 경향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성모 신심을 중심으로 형제회들이 도시마다 속출하였다. 많은 도시, 수도회, 공동체가 ‘무죄한 잉태의 마리아’ 이름으로 봉헌(FMI 1816년 창설)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도 1838 12 1일 당시 제2대 조선교구장이었던 앵베르 주교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교구의 주보로 정하는 것을 인가해 줄 것을 교황청에 요청하였고,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41 8 22일자로 이를 허락하였다. 1898년에는 명동성당이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다.

예술가들은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외경(外經)으로부터, 구약의 상징적 이미지로부터 영감을 얻어 형상화하면서, 신자들에게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가 가시화되었다. 대학의 신학부들이 소르본느를 시작으로 ‘피의 맹세’를 통하여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옹호하는 일이 유럽에 확산되었다. 마침내 도미니코 수도회도 그들의 기도문에 마리아의 잉태에 관한 ‘무죄한’(Immaculare)라는 단어를 쓸 수 있도록 교황청에 청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스도인인 제왕들과 주교들은 교황에게 빈번히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교의로 선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667년부터 1799년까지 13명의 교황들은 선대의 교황들의 입장을 따라 중립적 자세를 취하였다. 성모 축일을 장려하면서도 신앙 교의로 선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레오 13세는 도미니코회 입장을 따랐으며, 그레고리오 16는 당시 성모 발현으로 알려진 ‘기적의 메달’ 사건에 영향 받아 주위로부터 수없이 교의 선포를 종용받았다. 1840 10명의 프랑스 주교들이 공동 서한으로 그레고리오 16세에게 교의 선포를 청원하였다. 1843년 프랑스 국가 교회의 총책임자였던 추기경 람브루스키니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호의적인 성서, 전승, 교황청 문헌 등을 모두 수집하여 책으로 발간하였다. 이 책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가톨릭 교회 안에서 상당한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가 선포되기까지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하나의 자극제로 작용하였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이어 1846비오 9가 교황이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뛰어났다. 그도 끊임없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의 선포를 요청 받았다.

- 예수회의 죠반니 바티스타 페론(Giovanni Battista Perrone)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에 관하여>라는 책이 발간되어 5년 간 10판이 발행될 정도로 인기를 보였다.

- 1848 6월에 교황은 신학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의견을 물었다. 대다수의 의원들이 교의로 선포할 것을 찬성하였다. 그러나 갈멜회원 바울로는 성서적 근거가 희박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였다. 로마의 교의신학 교수였던 필립보 코싸(Filippo Cossa)는 페론의 이론에 반대하였다. 성서나 교회 전승의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1848 11월 혁명으로 로마를 떠나 가예타로 피신한 교황은 추기경 자문위원회를 소집하여 의견을 물었다. 그중 한 사람이었던 안토니오 로스미니 세르바티(Antonio Rosmini serbarti)는 교의로 선언할 수는 있지만 독일의 종교 개혁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시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교의 선포를 자제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자문위원들은 회칙으로 선포하고, 모든 전례서 안에 마리아의 잉태 축일에 공식적으로 ‘무죄한’(Immaculare)이라는 용어를 삽입할 것을 자문하였다. 교황은 603명의 주교들에게 설문지를 보내어 546명의 호의적인 답을 얻었다.

- 1850년 로마로 되돌아온 교황은 새로운 자문 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훗날 제1차 바티칸 공의회 의장이 되었던 요셉 안드레아 비짜리(Giuseppe Andrea Bizzarri) 추기경은 독일의 상황을 상기시키며 시기상조임을 조언했으나, 그러한 반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교의 선포를 가로막을 수 없었다.

- 1854 3 22, 회칙 작성을 위해 자문위원에게 20명의 추기경들이 만든 네 번째 스케마를 넘겼다. → 새로 작성된 최종적 편집을 1854 12 2일 추기경단에 넘겼으며, → 추기경들의 긍정적 답을 얻어 12 8일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축일을 맞이하여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을 선포하였다.

그 후 1904 2 2일 교황 비오 10의 회칙 <그 날에>(Ad diem illum), 1953 9 8일 교황 비오 12의 회칙 <빛나는 화관>(Fulgens Corona)에 재 천명되고 있으며, 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에서도 “티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조금도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59)고 반복하고 있다.

 

2. 회칙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의 구조와 근거

 

  - 이미 교의 선포를 자제할 것을 교황에게 요청했던 주교들과 신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이 교의의 성서적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옹호할 수 있는 성서 구절을 만날 수는 있다. 비오 9세의 회칙은 끊임없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성모 신심과 봉헌으로 출발해서 교부들과 성서로부터 그 선포의 권위를 변호 받고 있다. 이 교의 선포는 다음과 같은 사상을 그 밑바탕으로 하고 있다.

- 이 교의는 ‘하느님 어머니’로서의 권위에 요구되는 것이다.

- 마리아는 ‘은총이 충만한 분’이시다.

- 육화의 신비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은 당신 구원 계획을 위해 마리아를 선택’하셨다.

- 이는 ‘성자의 권위’를 위해서도 마땅한 일이다.

** 그러므로 성서의 침묵은 반대보다는 동의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하느님은 하실 수 있고, 원하시고, 따라서 하신다”는 공식이 적용되고 있다.

 

1) 회칙의 내용과 구조

 

A. 마리아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설명. 하느님은 세기 이전에, 처음부터 마리아를 당신 성자의 어머니로 선택하시고 정하셨다는 점을 강조.

B.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관한 교회의 전통적 신앙을 소개. 이 신앙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탁월한 권위와 그분의 성덕에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지적한다. 아울러 하느님의 지혜이신 성자의 육화를 고려할 때, 더욱 걸 맞는다는 점도 지적한다.

C. 선대 교황들이 오랫동안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신심과 공경의 내용에 대해 격려했던 사실을 지적. 마리아의 잉태 축일, 성무일도, 성모 미사 등을 통해서 마리아께서 모든 죄로부터 무죄함을 경축해 온 사실과 특히 그러한 점을 격려하신 식스토 4, 알렉산데르 7세의 회칙들을 상기시킴.

D. 선대 교황들이 이 교의에 반대되는 입장들을 금지시킨 사실을 지적. 특히 식스토 4, 바오로 5, 그레고리오 15세의 회칙을 상기시킴.

E. 트리엔트 공의회가 마리아의 원죄 없음을 확인한 사실과 이러한 공의회의 결정이 교회 전통과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표현.

F. 이 교의에 관한 교부들의 가르침들을 제시.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이단들과 부단하게 겨루며 지켜 낸 가르침임을 강조.

G. 교부들이 발굴해 낸 성서적 근거로서 창세기의 원 복음, 노아의 방주, 출애굽기의 불타는 가시덤불 등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예표해 주는 상징으로 열거되고 있다. 아울러 신약성서에서 천사와 엘리사벳의 인사를 통해, 마리아 자신의 노래 <마니피캇>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은총’과 ‘위대하심’에서 그 증언을 찾을 수 있음을 언급.

H. 교부들의 신학적 업적으로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와 교부들의 마리아 찬양이 열거됨.

I. 이 교의의 선포를 요청하였던 그리스도교 국가의 왕들과 주교들, 그리고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의 이름으로 봉헌한 나라, 도시, 교회, 수도회 등을 열거하며 가톨릭의 온 교회가 보편적으로 믿고 있는 신앙의 진리라는 사실을 지적.

J. 마지막으로 장엄하게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를 교의로 선포.

 

2) 회칙의 성서적․신학적 근거

 

A) 구약성경

- 창세 3, 15: 마리아는 옛 뱀에 대적하여 승리를 쟁취한 후손의 어머니.

- 창세 6,8-8,19(노아의 방주): 완벽하게 구원된 모습이 마리아의 무죄한 모습을 드러낸다.

- 창세 28,12(야곱의 사다리): 마리아의 사다리는 주님이 직접 오르내리는 사다리이다.

- 탈출 3,2-3(불타는 떨기나무): 어떤 것으로부터도 해를 입지 않는 마리아의 모습.

- 아가 4,4(높고 둥근 다윗의 망대): 견고한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준다.

- 아가 4,12(울타리를 두른 동산, 봉해 둔 샘): 깨끗한 마리아의 모습.

- 시편 87, 1.3(하느님의 도성): 거룩한 산 위에 세워진 모습의 마리아.

- 1열왕 8,10-11(야훼의 영광이 가득한 성소): 주님을 태중에 모셨던 마리아의 영광.

 

B) 신약성서

- 루카 1,28(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는 하느님 어머니의 권위에 합당한 것으로서, 어느 누구도 천사로부터 그러한 인사를 받은 사실이 없다.

- 루카 1,42(믿음으로 복되신 분): 엘리사벳의 인사 역시 엘리사벳이 성령을 받아서 한 축복의 인사로서 마리아의 영원한 축복을 의미한다.

- 루카 1,49(전능하신 주님께서 큰일을 하신 분): 천사와 엘리사벳의 축복의 인사와 상응한 마리아의 고백으로서, 하느님의 충만한 은총과 그에 따르는 무죄함을 드러낸다.

 

C) 신학적 근거

-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는 그분의 신적 모성에 합당한 특권을 드러낸다. , 하느님 아들이 육화 할 거처로서의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다는 점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적극 협력한 어머니의 모습을 나타낸다.

- 하느님의 은총(‘은총이 가득하신 분’)은 주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상실하지 않고 보존한 것은 마리아에게 윤리적 성덕이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서는 그러한 마리아의 윤리적 성덕을 동정, 순종, 겸손, 용기, 침묵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 신자들의 신앙(Sensus fidelium)이 그 근거가 된다. 바실리오는 “기도의 법은 믿음의 법을 세운다”(Ut lex orandi statuat legem credendi)라는 말을 하였다. 이 원칙을 적용할 때, 신자들의 신앙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에 힘을 실어준다.

- 하느님의 전능함이 근거가 된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시기에, 원하시는 것을 행하실 수 있다( Potuit, voluit, fecit).

 

3. 결론: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적 의미와 신학적 반성

 

- 마리아가 지극히 거룩하신 성자의 어머니라는 역할은 그리스도와의 밀접한 영-육 관계를 고려하게 하였으며, 마리아의 윤리적 덕성은 그에 합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를 발견하게 되고, 따라서 마리아에게 ‘무죄한’(Immaculata)이라는 단어를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마리아가 언제 정화되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적 논란이 있었다.

- 이러한 신학적 문제점들과 달리 마리아에 대한 대중신심은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제를 주장하였다. 둔스 스코투스는 이러한 주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편 구원 중재와 아무런 모순이 없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마리아를 원죄로부터 보호하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능력을 보다 위대한 것임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둔스 스코투스 이후 마리아 신심은 더욱 활발해졌고, 성모 발현, 특히 ‘기적의 메달’ 사건은 이러한 신심을 더욱 자극하였다.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마침내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가 선포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과 신학적 사유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느님의 전능성과 하느님 은총의 무한함.

하느님의 선택의 정당성

예수 그리스도의 육화의 적합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중재 능력의 위대성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한 성실한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광

은총을 받은 인간, 구원받은 인간의 미래적 모습의 선취적 성취

 

- 그러나, 문제점이 없지 않다. 오늘날 마리아의 원죄로부터의 면책 특권을 다루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원죄 이론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 8장이 고려하고 있는 타 종파와의 대화를 위한 사목적 배려의 관점이다.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그들과의 대화에 있어서 분명 하나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 이러한 아쉬움 속에서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점: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이라는 성서적 계시의 구체적인 한 가지 표현이다. 또 이 교의는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기인한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죄와 탓은 하느님의 구원에 결코 협력하는 것이 될 수 없음을 아울러 가르쳐 준다.

 

IV. 마리아의 승천(Assumptio)

 

- 용어: 예수의 승천은 “Ascensio"(상승, 오름, 올라 감)라 표현하고, 마리아의 승천은 ”Assumptio"(올림을 받음)로 표현한다. 여기서 예수의 승천은 능동성을 드러내는데 반해 마리아의 승천은 수동성을 드러낸다. 이러한 구별을 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예전에 마리아의 승천을 “몽소승천”(夢召昇天)이라 하였다. , 마리아는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것’이다.

- 마리아 승천 교의는 1950 11 1일 비오 12세의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Munificentissimus Deus)를 통하여 장엄하게 선포되었다.

- 이 회칙이 선포되기까지는 오랜 세기동안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이 교의는 확실한 성서나 교부들의 증언이 결여되어 있다. 성서는 십자가 아래 계신 마리아(요한 19,25-27),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며 성령이 오시길 기다리는 마리아(사도 1,14), rm 이후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전해주고 있지 않다.

- 그러나 일찍부터 있었던 마리아의 축일(마리아의 잠드심, Dormitio)과 대중적 신심, 또 성인들의 이름을 빌려 쓴 작품들이 영향을 주었다. 결정적으로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 선포가 크게 작용하였다.

 

1. 성모 승천 교의 선포의 역사적 과정

 

1) 교부시대의 성모 승천에 관한 초기 증언들과 교부들의 견해

 

- 일찍이 마리아에게 중재를 부탁하는 기도문이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3세기경부터 전해지는 것으로 보이는 “천주의 성모여, 당신 보호하심에”(Sub tuum presidium)이다. 마리아께서 이미 하늘에 계시고, 그래서 중재해 주실 수 있다는 사상이 엿보인다.

 

- 4세기 말, 라미스의 에피파니오(Epiphanius of Salamis) 교부는 마리아 지상생애의 마지막(또는 승천)에 관해서 처음 언급한다. 그는 다음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적인 죽음을 맞이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마리아는 순결한 동정성으로 인해 영예의 화관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시메온의 예언 “칼”(루가 2,34)을 고려할 때, 순교의 가능성이 있다.

요한 묵시록(특히 12)에 비추어 보면, 하늘에 불려 올림을 받으실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구원된 모든 사람들이 장차 얻게 될 상급이기 때문이다.

 

- 예루살렘의 디모테오: 마리아의 순교 가능성을 거부, 마리아가 죽기 전에 육신과 더불어 하늘에 오르셨음을 주장.

 

- 예루살렘의 사제 헤시키오: ‘마리아의 기념’ 축일에 시편 131,8(-순례자의 노래- “주님, 일어나시어 당신의 안식처로 드소서. 당신께서, 당신 권능의 ‘궤’와 함께 드소서.)을 인용하면서 마리아를 계약의 궤와 동일시하며 하늘에 계신다고 주장함으로써 성모승천 암시. 이런 주장은 당시로서 매우 이례적이다. 왜냐하면 게세마니 부근에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는 전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전승에 의하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그곳에 마리아 성전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가명-<피아첸자의 안토니오>: 마리아의 집이 있는데, 거기서 하늘로 올림을 받으셨으며, 바로 거기에 성전이 세워졌다고 함.

전설-<에우티미아카 이야기>: 요한 다마쉐누스의 마리아 승천에 관한 강론 두 편이 삽입되어 있음. 이 전설에 의하면, 황제 마르치아누스(Marcianus)와 왕비 풀케리아(Pulcheria)가 예루살렘 주교 유베날(Juvenal of Jerusalem)에게 마리아의 시신을 인도할 것을 요구했으나, 마리아가 이미 하늘로 오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콘스탄티노플 근처 발케르네에 경당을 세웠다고 한다. 훗날 또 다른 외경은 그 이야기에 황제 내외가 마리아의 시신 대신에 그분의 옷가지를 전해 받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5-6세기에 마리아 생애의 마지막에 관한 많은 외경들이 전해졌는데, 그 내용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알려서 모든 제자들이 모였다. 마리아는 제자들과 삼일 간 하느님을 찬양하며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어머니를 안심시킨다. 마침내 운명하시자, 천사 미카엘은 그분의 영혼을 받아 하늘로 오르고, 육신은 베드로와 제자들에 의해 삼일 동안 지켜졌는데, 사흘 후 주님이 다시 오셔서 육신마저 하늘로 올림을 받으신다. 마지막 부분은 외경에 따라, 번역에 따라 상이하다. 어느 외경엔 하늘이 아니라 지상의 어느 낙원에 썩지 않도록 보관되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 데살로니카의 요한(+ 610?/649?): 8 15일을 ‘마리아 하늘에 오르심’을 경축하는 축일이었음을 전함.

- 황제 마우리치우스(Mauricius, 582-602)는 자신이 통치하는 전역의 모든 교회가 8 15일을 “마리아의 잠드심”(Koimesis) 축일로 거행하도록 명했는데, 이후 이 ‘잠드심’은 ‘하늘에 오르심’(Analephsis)으로 바뀌었다.

 

- 마리아 승천에 관한 강론: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 마리아의 운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과 다를 수 없다고 주장. 그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셔야만 한다는 것. 그분 육체의 승천은 어머니에 대한 예수의 보답이며, 사랑이기도 하고, 우리를 위해 하늘에 중재하시기 위해서도 당연하다는 것.

크레타의 안드레아- 마리아의 빈 무덤을 전하면서 순결한 그분이 죄의 벌로 죽음을 겪으셨겠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육체와 더불어 하늘에 오르신 것인지는 분명히 밝히지 않지만, 죽음 후 하늘에 오르셨음을 주장.

요한 다마쉐누스- 마리아 승천을 마리아의 동정성의 신비와 연결. 그러나, 마리아는 승천의 영광을 얻기 전에 죽음을 겪어야 했음을 받아들이고 있다.

투르의 그레고리오 - 서방교부로서는 처음 마리아의 승천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마리아의 임종으로 모든 사도들이 모였고, 마리아의 육체는 무덤에 안장된 다음 영혼과 분리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2) 중세 신학자들의 논쟁

 

- 중세의 많은 신학자들이 성모 승천에 관해 호의적이었다:

마리아의 무죄성과 관련하여 육체의 승천 주장.

예수 그리스도에게 육을 주신 어머니로서 예수의 육체와 유사하다는 이유로 승천 주장.

천상에서 우리를 위한 중재를 해주셔야 한다는 주장.

 

- 당시 성모 승천에 관한 라틴어로 된 많은 문헌들이 속출.

 그중 대표적인 저서로서 <가명-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다.

A. (원죄의) 단죄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육은 벗어나 있다. 그 육체는 마리아로부터 취한 것이다.

B. 마리아는 하와와 운명을 함께 하지 않는다. 마리아는 출산의 고통 없이 성자를 낳으셨다.

C. 만일 그리스도께서 어머니의 동정성에 손상을 입히지 않으셨다면, 어째서 그분의 육체를 부패로부터 보존하시지 않으시겠는가?

D. 그리스도께서 취하신 마리아의 거룩한 육체가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운명을 겪으셨으리라 말하는 일이 두렵다(마리아의 육체를 포함한 승천 암시)

E. 주님이 “내가 있는 곳에 나의 종들도 있어야 한다.(요한 12,36)는 말씀을 하셨으니, 이 약속은 특별히 마리아에게 완수되어야 할 것이다. 그분은 다른 누구보다도 은총을 지니셨기 때문에 그렇다.

F. 하느님은 거룩한 자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으려 하시는 분이시다.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해내신 하느님은 마리아의 육신을 부패하지 않도록 보존하실 능력도 지니신다.

 

3) 성모 승천 논쟁과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 선포

 

- 한 세기 앞서 있었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 선포는 승천 교의 선포에 큰 격려가 되었다. 1868 6 29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 20차 공의회)는 교의 선포에 있어서 교황의 무류지권(無謬之權)을 선언하였다. 성모승천 교의는 이러한 무류지권이 처음으로 적용된 셈이다. 그러나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와 마찬가지로 ‘성모 승천’ 교의도 교황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청원에 의한 것이다.

 

- 1869년 라벤나의 대주교는 교황 비오 9세에게 승천 교의를 선언하도록 격려 하였다. 1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 113명이 서명, 영국의 예수회원 실베스터 헌터(Sylvester Hunter)의 마리아 승천에 관한 논문을 지지하며 청원하였다.

- 1908년 비오 10세는 교의 선포를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함을 밝혔다. 이어서 국제 마리아 회의가 곳곳에서 열렸다: 1908년 사라고사(Zaragoza), 1910년 살리스부르고(Salisbur), 1912년 트리어(Trier) . 대부분의 국제 마리아 회의는 교황에게 마리아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를 희망한다는 결과 보고서를 올렸다.

- 1922 3 22일 교황 비오 1l세는 프랑스의 주보로서 ‘승천하신 우리의 여주인’(Nostra Signora dell'Assunzione)라는 칭호를 주었다.

- 1863년부터 1920년 사이에 160만 명, 1921년부터 1940년 사이에는 647만 명의 신자들이 성모승천 교의 선포를 청원하는 서명을 보내왔다. 결국 19개국으로부터 3000여 건이 넘는 청원서에 800만 명 이상의 신자들이 서명을 한 것이다.

- 그러나 교황청은 그 숫자보다 상이한 신학적 동기와 근거에 더 관심을 보였다. 청원의 일부는 성서에 계시된 진리로 주장하였고, 일부는 사도적 구전 전승임을 호소, 또 일부는 현재 온 교회의 일치된 신앙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 성모 승천을 마리아의 신적 모성과 관련시키기도 하고, 일부는 마리아의 완벽한 동정성, 또 일부는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또는 구원 역사의 공동협력, 그리고 마리아의 충만한 은총에 근거하여 교의로 선포할 것을 주장하였다.

 

- 한편 많은 신학자들도 성모 승천 교의 선포를 지지하고 나섰다. 무엇보다도 결정적 공헌을 한 신학자는 예수회의 휠로그라씨(G. Filograssi)이다. 그는 성모 승천 신앙의 근거로서 성모의 모든 덕성과 역할과 특권을 종합한다. 즉 마리아의 신적 모성, 완전한 동정성, 온전한 성성, 무죄한 잉태,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내밀한 일치가 그 전거가 되는 것이다. 휠로그라씨는 교의 선포 직전에 이와 같은 교회의 입장을 신학적으로 종합하여 표명하였다.

- 그러나 이에 반대한 신학자들도 있었다. 그 대표적 인물들이 교회사학자였던 이냐시오 될링거(J.J.Ignazio von Dollinger)와 교부학자 요한 에른스트(Giovanni Ernst)이다.

이냐시오: 교황의 무류지권과 관련하여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는 것을 반대. 마리아 승천 이야기는 전설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요한 에른스트: 다음 4 가지 이류를 들어 반대.

   (1) 동방교회에서 시작하여 서방교회에서까지 거행하게 된 8 15일의 성모 축일은 본래가 승천(Assumptio)을 기념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잠드심(Dormitio), 즉 천상의 탄일(dies natalis)을 기념한 것이다.

  (2) 교회 역사 안에서 마리아의 승천이 계시의 확실한 내용이라는 점에 신학자들의 의견이 일치되고 있지 않다.

  (3) 구약에 근거하고 있는 예형론은 확실하지 않다.

  (4) 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수는 일부일 뿐이다.

 

-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 승천 신앙을 교의로 선포하는데 확신을 얻기 위해, 선대 교황 비오9세와 마찬가지로 주교들, 신학자들, 그리고 신자들의 동의를 묻고 자문을 구했다. 1869년에서 1940년까지 3018건의 청원을 분석한 결과 96%가 마리아 승천을 교의로 선포될 것을 염원하였다. 물론 그 동기는 신학적이라기보다 사목적인 측면이었다. 신자들의 마리아 신심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침내 비오 12세는 1950년 모든 성인의 축일(11 1)에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였다. 이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Munificentissimus Deus)는 교황과 38명의 추기경 서명이 뒤따르고 있다.

 

2. 회칙의 구조와 성서적․신학적 근거

 

1) 회칙의 내용과 구조

- 내용상 다음 9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는 그분의 신적 모성과 깊이 관련된 특권으로서, 육체적 승천을 준비해 주었다. 죄 없는 분이 부패의 무덤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2)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하기를 열망하는 교회의 입장과 많은 주교들과 신자들의 동의와 지지를 설명한다. 신자들의 이러한 신앙은 성서에 나타난 시므온의 예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그리스도 구원 사업에 있어서의 마리아의 동참을 고려할 때, 그분이 무덤의 부패의 지배하에 있을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3) 마리아 승천에 관한 백성들의 신앙은 오랜 세기 동안 거행되어 온 마리아 공경과 전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로사리오기도, 마리아의 축일(마리아 탄생 축일, 예수 탄생 예고 축일, 마리아 봉헌 축일, 마리아의 잠드심 기념 축일), 전례기도 등이 그것이다.

  (4) 이 신앙의 진리를 교부들과 신학자들의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음을 지적한다.

  (5) 전승의 증언에서 얻어낼 수 있는 비유들도 열거하고 있다. 시편 132,8의 부패할 수 없는 ‘계약의 궤’, 시편 45,10.14-16의 구원의 임금님 오른편에 앉게 되는 ‘황금으로 단장한 황후’ 등이다.

  (6) 성서적 근거로서 에와-마리아의 대조와 구원계획을 위해 태어나기 전에 선택되었음을 제시해주는 창세 3,15와 은총의 충만함을 계시해주는 루가 1,28 등이 언급되고 있다.

  (7) 성모 승천 교의가 성서 이외에도 다양한 이성적 근거를 가지고 있음을 제시한다. 신자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신앙감, 교회적 예배, 다른 계시 진리와의 조화, 신학자들의 지혜롭고 과학적인 연구 등이다.

  (8) 이 교의가 인류를 위한 축복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느님과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에게의 영광은 신자 각자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천상 어머니를 향한 신심으로 자극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체로서 그러한 영광에 일치하기를 열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회칙의 성서적․신학적 근거

 

A)  구약성경

 

창세 3,15: 죄와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의 투쟁에 마리아가 함께 하고 그 승리로 얻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부활에 함께 참여함을 예언하고 있다.

탈출 20,12: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어머니를 어떻게 공경하였는지 알려준다.

이사 60,13-14: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몸을 얻으신 그 어머니를 탁월한 방법으로 영광스럽게 하셨음을 시사해 준다.

시편 132,8: 야훼가 쉬실 계약의 궤는 야훼 하느님과 함께 천상에 있어야 한다.

시편 45,10.14-16: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왕후는 그 임금이신 주님 오른편에 계셔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아가 8,5: 사랑하는 임에게 몸을 기대고 올라오는 아가서의 여인은 마리아의 육신이 천상으로 올라감을 상징해 준다.

 

B) 신약성경

 

루가 1,28: 모든 여인 중에서 가장 복되시고, 은총이 가득하신 그분은 은총의 충만함의 완성으로서의 승천의 신비를 납득하게 해준다.

요한 묵시록 12: 묵시록의 여인은 1차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 12개의 별은 구약의 이스라엘 12부족, 그리고 새 계약의 백성을 뜻하고, 용은 옛 뱀을 뜻한다. 그러나 회칙은 여인의 아기가 구세주이므로 그 여인을 마리아에게도 적용한다. ‘해를 입고, 달을 밟고, 별이 열두 개 달린 월계관’은 천상에 오르신 마리아를 표현한다.

 

C) 신학적 근거

 

마리아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영․육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러한 일치와 연결성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으로부터 마리아의 승천을 이해하게 해준다. 마리아는 성자를 태중에 모셨던 ‘감실’이다. 따라서 마리아도 그리스도처럼 승천하셔야 한다. 왕후는 왕 오른편에 계셔야 하는 것(시편 45,10)이다.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리아의 신적 모성의 특권이 마리아의 승천을 요구한다.

마리아의 동정적 육체의 거룩함 역시 마리아의 승천을 요구한다. 무죄한 육체가 부패될 수 없다. 하와로 인한 저주의 지배, 즉 죽음의 부패의 지배에서 벗어났음을 드러낸다. 마리아의 승천은 이러한 마지막 승리의 상징이다.

마리아의 충만한 은총은 다른 모든 사람들, 천사들보다 탁월한 위치에 있음을 드러낸다.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효도를 고려할 때, 더욱이 부모에 대한 공경을 4번째 계명으로 주신 것을 고려할 때, 성모 승천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성모 승천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마지막으로 얻을 영광의 표징이다.

성모승천(Assumptio)과 예수 승천(Ascentio)은 구별된다. 마리아의 승천은 예수 승천에의 참여이다.

 

3. 결론: 성모 승천 교의의 의미와 신학적 성찰

 

- 하늘의 영광 안에 영혼과 육신이 수용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볼프강 바이너르트(Wolfgang beinert): 마리아의 승천은 마리아가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서의 의미가 더욱 강조된다. ,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에 더욱 거룩하게 되셨고, 그 목표인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셉 랏징거: 성모 승천 교의는 마리아를 찬미하고 찬송하는 최고의 표현 형식이다. 자신을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내맡긴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에 참여하였음을 의미한다.

라너: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근원적으로 구원받은 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원 역사 안에서 거룩한 동정녀이며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지니는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교의는 마리아를 위해서만 중요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교회론적으로도, 종말론적으로도 중요성을 지닌다. 이 근원적인 구원은 모든 사람의 구원이요 그 충만함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마태 27,52: 무덤이 열리면서 잠들었던 많은 옛 성인들이 다시 살아났다). 그러므로 성모 승천 교의는 우리가 <사도신경>의 내용 가운데서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이라는 우리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고백하는 것을 바로 마리아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셈이다. , 마리아의 승천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구원 행위의 완성이요, 은총의 완성이며, 우리는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도 희망하는 것이다.

 

- 이 교의를 선포한 회칙의 내용에는 신앙의 본래 본질에 아무런 모순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성찰할 점은 여전히 있다.

과연 비오 12세가 회칙을 선포한 것이 좋은 시기였는지.

성서에 명시적으로 증언되어 있지도 않고, 또 초기 전통에서도 명료하지 않았던 이 교의 안에 사도전승이 어떻게 함축되어 있다고 입증할 수 있는지.

비오 12세의 회칙은 마리아의 죽음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그래서 마리아의 죽음에 대해 자유롭게 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는다. 만일 마리아의 승천이 죽음과 부활의 과정을 생략하고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우리의 희망으로 제시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교의의 발전 과정, 또 축일 명칭의 변화 과정을 볼 때, 마리아의 잠드심→ 이주→ 천상 탄일→ 승천으로 발전해 왔다. 무엇보다도 무죄한 그리스도께서도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 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헌장>은 갈라진 형제들과 마리아론에서, 특히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와 승천 교의에 관해서 크게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 흠숭과 마리아 공경의 구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갈라진 형제들에게 오해를 줄 요소를 피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아울러 아직도 마리아론에 관하여 학자들이 더욱 연구하고 논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신학자들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데 있어서 지나친 마음의 협소함과 마찬가지로 온갖 거짓 과장도 힘써 피하기를 간곡히 부탁하는 바이다. 교도권의 가르침을 따라 성서와 교부들과 교회 학자들과 교회의 전례를 연구함으로써 복되신 동정녀의 역할과 특권을 올바로 밝혀줄 것이다.... 또한 말이나 행동으로 갈라진 형제나 다른 누구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를 품게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다 힘써 피할 것이다.(LG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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